정유4사, SAF 사업 시동 걸었지만 관련법 개정 늦어
[데일리한국 김정우 기자] 친환경 정제원료로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정유업계의 신사업 분야인 바이오항공유(SAF·지속가능항공유)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다만 이미 국가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해외에 비하면 제도 정비가 다소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달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석유정제원료로 친환경 정제원료의 사용을 허용하는 내용의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SAF는 동·식물성 기름이나 폐식용유(UCO) 등 바이오 원료를 기반으로 생산하는 친환경 항공유로 기존 화석연료 석유 항공유 대비 항공기의 탄소 배출량을 최대 약 80%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AF의 원료가 되는 바이오매스 성장 과정에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효과도 있다.
특히 항공기 연료는 부피와 무게 제약이 승용차나 선박보다 크고 동력계통 특성상 전동화·수소연료 등으로의 전환이 어려워 특히 항공 분야 차세대 연료로 SAF가 주목을 받는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2009년 SAF를 2009년 처음 소개한 이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해 SAF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5년부터 항공유에 SAF를 최소 2% 이상 섞는 것을 의무화했으며 2050년까지 혼합 의무화 비중을 2030년 6%, 2035년 20%, 2050년 70%까지 단계적으로 높일 예정이다. 미국도 올해부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세액공제·보조금 혜택을 지원하며 SAF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연료 시장은 2020년 하루 215만배럴에서 2050년 459만배럴로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정유사가 이 같은 바이오연료 제품을 생산할 수 없었다. 현행법이 석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제조하는 사업으로만 석유정제업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정제업의 범위를 친환경 정제원료를 혼합한 제품까지 확장하는 이번 개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되면 정유사의 SAF 생산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국내 정유 4사 가운데 SAF 시장 선점에 가장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곳은 GS칼텍스다. GS칼텍스는 올해 9월부터 11월까지 대한항공과 총 6회의 SAF 실증 운항(인천발 로스앤젤레스행)을 진행했으며 이를 토대로 안전성, 에너지 소비효율 등 SAF 성능 테스트를 진행한다.
GS칼텍스와 대한항공의 실증 운항은 정부의 SAF 실증연구 추진 계획에 따라 진행됐으며 양사는 이를 위해 지난 6월 국내 최초의 SAF 실증 연구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를 위해 GS칼텍스는 국내 업계 최초로 핀란드 바이오연료 생산 기업 네스테와 협력 관계를 맺고 미국재료시험협회(ASTM) 등 국제 품질 기준을 충족한 SAF 제품을 공급받았다.
또한 GS칼텍스는 국내 정유사 최초로 바이오연료에 대한 국제 친환경 제품 인증 ‘ISCC EU’를 취득하며 원료 수급부터 제조, 판매 등 전 과정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지난달에는 포스코인터내셔널과 인도네시아에 2600억원을 투자해 바이오 원료 정제 시설을 건설하는 내용의 합작투자 협약을 체결, 안정적 원료 수급을 통한 공급망 강화에 착수했다.
이 같은 GS칼텍스의 바이오 사업은 미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사적 혁신 정책 ‘딥 트랜스포메이션’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SAF 외에도 HMM과 바이오선박유 시범운항을 진행하는 등 바이오연료 사업 전반의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수소화 식물성 오일(HVO)을 활용한 SAF를 생산,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올해 대산공장에 연산 13만톤(t) 규모의 차세대 바이오디젤 제조 공장을 건설하고 내년까지 대산공장 일부 설비를 연산 50만톤 규모 HVO 생산설비로 전환할 예정이다. 앞서 2021년에는 대한항공과 SAF 제조·사용 기반 조성 협력을 위한 협약도 맺은 바 있다.
또한 최근 HD현대오일뱅크는 바이오 원료 경쟁력을 위해 코린도그룹, LX인터내셔널과 각각 연간 4만톤, 총 8만톤 규모의 팜잔사유(PFAD)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PFAD는 팜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산도가 높아 소수의 바이오디젤 공장에서만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도 울산콤플렉스(CLX)에 SAF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있으며 지난해 미국 펄크럼 바이오에너지에 2000만달러를 투자, 생활 폐기물을 활용한 합성원유 생산 등 바이오에너지 사업을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자회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통해 폐자원 기반 원료 업체 대경오앤티에 투자를 결정했으며 앞서 지난 3월 중국 서남 지역 최대 규모의 폐식용유 공급업체 진샹에 투자를 진행했다. 바이오연료 시장 공략을 위해 한국과 중국을 아우르는 바이오 원료 확보 기반을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에쓰오일은 2021년 삼성물산과 친환경 수소·바이오연료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양사는 바이오연료 사업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해외 인프라를 활용한 원료 공급망 구축·생산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처럼 국내 정유업계의 SAF 시장 개척이 본격화 했지만 이미 대규모 국가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해외에 비하면 이제야 겨우 제도적 근거가 마련된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SAF 시설 투자부터 제품 생산·운송·혼합·저장까지 보조금을 지원하며 이와 별도로 IRA를 통해 자국 내 바이오매스를 활용해 생산한 SAF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일본은 2026년 가동 예정인 연산 10만㎘ 규모의 SAF 생산 설비 투자 ‘이데미츠코산 프로젝트’에 전체 사업비의 약 64%에 해당하는 2570억원을 지원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 개정안 마련에 따라 그간 정유업계가 요청해온 SAF 생산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추진한다.
기획재정부의 ‘신산업 분야 규제혁신 방안’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을 수정해 SAF를 비롯한 저탄소 항공유를 신성장·원천기술로 지정하고 이를 통해 연구개발비의 최대 40%, 시설투자비의 최대 15% 세액을 공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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