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주요 그룹에서 1980년대생들이 핵심축으로 떠올랐다. 오너가(家) 3, 4세들이 경영 주축으로 부상하는 흐름이며, 전문 경영인들은 뒷전으로 물러나는 추세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주요 대기업에서 젊은 오너에 대한 경영 능력 검증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1980년대생들이 대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는 1980년대생 임원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의 ‘세대교체’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승계 준비를 완료한 모양새다. 1982년생인 그는 지난 2009년 HD현대 전신인 현대중공업에 대리로 입사하며 본격적으로 회사에 발을 내딛었다. 이후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을 거쳐 2021년 사장에 오른 지 2년 만인 지난달 부회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수소 등 미래 신사업 발굴을 주도해 온 경영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다.
내년에는 그룹의 주력 분야인 조선 부문을 이끈 가삼현 HD한국조선해양 부회장과 한영석 HD현대중공업 부회장이 자문역으로 물러날 예정이라 정 부회장이 그룹 내 유일한 부회장으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화그룹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아들들이 약진하고 있다. 지난해 1983년생인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승진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3남인 1989년생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이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배지를 바꿔 달았다. 올 초에는 차남인 1985년생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100대 그룹 사장단 중 최연소라는 기록을 세웠다.
두 형들에 비해 경영 일선 진출이 다소 늦은 김 부사장은 그룹의 차세대 성장 동력 중 하나인 로봇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어 시간이 갈수록 점차 존재감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초고속 승진 기록을 세우고 있는 오너 경영인에는 이규호 코오롱그룹 부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1984년생인 그는 지난해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지 불과 1년 만인 올해 부회장에 올랐다.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차장으로 입사했으니 불과 11년 만에 부회장 배지를 달았다.
지주사인 ㈜코오롱에서 전략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이 부회장은 자동차 유통 부문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올해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독립 법인으로 출범시키는 등 그룹 미래 신사업 발굴과 추진의 주역이다.
롯데그룹의 경영 승계 작업도 속도가 붙었다. 신동빈 회장은 장남인 신유열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키며 경영 수업의 보폭을 넓혔다. 1986년생인 신 전무는 지난 10월에는 그룹의 사업 거점 국가인 베트남 일정에 아버지와 동행하는 등 국내외에 얼굴을 적극 내밀고 있다.
신 회장은 당시 아들이 동행한 의미에 대해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유통을 포함해 국내외 사업 현장을 전반적으로 살피면서 공부할 계획”이라고 설명하며 처음으로 경영 수업을 공식화한 바 있다. 이번 인사 이후 신 회장은 후계 구도를 단단히 하기 위해 신 전무에게 향후 더욱 무게감 있는 역할을 맡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1980년대생 오너가 자제들의 그룹 경영 권한이 확대되자 재계에선 기업의 조직 문화가 한층 개방적으로 변화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젊은 감각을 지닌 리더가 그룹의 선두에 서면 신사업 발굴 등 변화가 극심한 분야에서 기업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