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최태원 SK 회장이 그룹 인사에 대대적으로 칼을 댔다. 지난 10월 열린 SK CEO 세미나에서 언급한 ‘서든데스’(돌연사)의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대수술에 나선 셈이다. 최 회장은 집도의로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선택했다. 또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에게도 임원 배지를 달아줬다. 이른바 ‘오너 경영 강화’가 SK의 환부를 제대로 진단하고 과감한 수술법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7일 SK에 따르면, 최창원 부회장은 그룹 내 최고협의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 신임 의장으로 선임됐다. 복합적인 위기로 대내외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SK그룹 2인자’로 불리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자리도 자리이지만,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장동현 ㈜SK 부회장·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부회장단 4인이 일거에 2선으로 물러나면서 최 의장은 입지와 위상이라는 측면에서 실세로 활약할 수 있게 됐다. 지난 2013년 공식 조직으로 격상된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오너 일가가 이끄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최 회장은 ‘사촌경영’에 힘을 실었다.
최 의장은 SK그룹 창업자인 고(故) 최종건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1964년생인 그는 1960년생인 최 회장보다 네 살 아래다. 최태원 회장은 최종건 회장의 동생인 최종현 회장의 아들이다. 즉, 최 회장과 최 의장은 사촌 관계다. 최종건 회장이 동생에 물려준 것처럼 이번에는 최 회장이 사촌 동생에 손을 내민 것이다.
물론 최 의장의 뛰어난 업무적 능력도 그룹 세대교체에 기여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최 의장은 1994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경영기획실에 입사한 이후 SK케미칼과 SK건설, SK가스를 거쳐 2017년 중간지주사인 SK디스커버리의 부회장에 올랐다. ‘워커홀릭’으로 알려져 있는 그는 친환경 소재와 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사업 전환을 진두지휘하고 있어 최 회장의 경영 전략 구축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재계의 평가다.
최 회장의 오너 경영 강화는 최 의장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장녀인 최윤정 SK바이오팜 전략투자팀장이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룹 내 최연소 임원이라는 타이틀이 최 본부장에게 주어졌다. 최 본부장은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등 신규 투자와 사업 개발 분야에서 성과를 내 사업 개발 조직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SK의 오너 경영 강화는 재계에선 ‘책임 경영’의 일환으로 해석한다. 이는 최근의 경영 환경이 얼마나 엄중한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근래 재계에선 오너가(家) 3, 4세들이 각 그룹의 경영 주축으로 부상하는 흐름이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이규호 코오롱그룹 부회장, 신유열 롯데그룹 전무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전문 경영인의 역할이 사업 추진이 아닌 관리 업무에 머무른다는 한계에 따른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은 최고경영자(CEO)가 결정을 해주지 않으면 결론을 내지 못한다”면서 “책임 경영 강화는 신사업 추진 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