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9개 증권사 위법행위 적발...최대 수천억 수준
담당자 30여명 수사당국에 넘겨...CEO 징계도 검토
금감원 부원장 "채권 관련 불건전 영업관행은 CEO 책임"
[데일리한국 김영문 기자] 최대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채권형 랩·신탁의 돌려막기로 관련 담당자 30여명을 수사당국에 넘긴 금융당국은 증권사 CEO들의 징계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이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CEO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공헌한 바 있어 지난해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이어 증권사 수장들의 징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채권 돌려막기' 등 관련 검사 의견서를 받은 9개 증권사(교보·미래에셋·유진·키움·하나·한국투자·KB·NH·SK)가 최근 이에 대한 소명 자료를 제출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지난해 초 모 증권사 조사 과정에서 채권형 랩·신탁 관련 위법행위를 적발해 같은해 5월부터 검사 범위를 9개 증권사로 확대했다. 지난달 17일 금감원은 검사 결과 대다수의 증권사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고객의 투자 손실을 제3자에게 전가하거나 회사자산을 이용해 제시한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등 다수의 위법사항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채권 돌려막기란 증권사들이 서로 짜고 불법으로 자전거래를 하는 것으로 만기가 도래한 계좌가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만기가 상대적으로 더 남은 계좌를 보유한 다른 증권사가 시세보다 비싸게 사 수익률을 높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한 증권사의 경우 2022년 중반부터 다른 증권사와 무려 6000회가량 거래했으며 이 과정에서 특정 고객 계좌의 기업어음(CP)을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해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간 전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행위는 조사한 9개 증권사 모두에게서 발견됐는데 그 규모는 증권사별로 최소 수백억원에서 최대 수천억원 수준이다.
또 일부 증권사는 고객의 수익률을 보장해주기 위해 회삿돈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고객이 다른 증권사에 가입한 랩·신탁 등을 증권사가 고가 매수해 1100억원 규모의 이익을 제공했다. 이 밖에도 고객과 약속했던 만기와 신용등급이 다른 상품을 편입해 운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금감원은 조사 발표와 함께 9개 증권사 운용역 30여명의 혐의 사실을 수사당국에 넘겼으며 CEO에 대한 징계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 돌려막기와 같은 위법행위에 대한 경영진의 감독 소홀 및 내부 통제 실패 책임이 있으며 특히 회삿돈을 이용한 이익 제공의 경우 경영진이 직접 관여했을 확률도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라임·옵티머스 사태에 이어서 또 CEO가 중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는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에게는 직무정지 3개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는 문책경고 등 징계를 확정했다. 당시 금융당국은 두 대표 모두 내부통제 실패를 이유로 들어 이 같은 중징계를 내렸다.
이번 채권 돌려막기 사태는 내부통제뿐만 아니라 경영진이 직접 위법행위에 가담했는지 여부도 쟁점이기 때문에 CEO 징계 가능성은 높게 점쳐지고 있다.
금융당국도 지난해 7월 열린 '증권사 영업관행 개선을 위한 간담회'에서 CEO의 징계 여부를 시사한 바 있다.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영업관행에 엄정히 대처하겠다"며 "증권사의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관행은 CEO의 관심과 책임의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컴플라이언스, 리스크관리, 감사부서 등 어느 곳도 위법행위를 거르지 못했다면 이는 전사적인 내부통제의 문제다"라며 "더 이상 고객자산 관리·운용과 관련한 위법행위를 실무자의 일탈이나 불가피한 영업관행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감원은 운용상 위법 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서는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업계가 협의해 객관적 가격 산정 및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를 통해 환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지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9월 손실이 확정된 일부 법인 고객들에게 100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선제적으로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