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급등에 정비사업 곳곳서 파열음…조합-시공사 기싸움 ‘팽팽’
전문가 “표준계약서 도입 한계…가산 기준 명확화·건축비 현실화 시급”
[데일리한국 김하수 기자] 원자재값, 인건비가 천정부지 치솟으면서 불똥이 재건축‧재개발 조합에까지 튀고 있다. 철근과 시멘트 등 주요 건설자재 가격이 줄줄이 오르면서 건설사가 공사비 인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조합은 최근 시공사인 현대건설로부터 공사비 1조4400억원 증액 내용이 담긴 공문을 받았다.
현대건설은 3.3㎡당 공사비를 기존 546만원 수준에서 829만원으로 늘리고, 공사기간도 기존 34개월에서 44개월로 10개월 연장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와 함께 기존 46개 동, 5440가구에서 50개 동, 5002가구로 공사를 변경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사업은 서울 강남권 정비사업 최대어로 꼽힌다. 조합은 2017년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고 2022년 1월 이주를 마쳤지만 조합 내홍과 신규 집행부 선임 등으로 인해 사업이 지연됐다. 물가 급등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시공사와의 공사비 책정 문제까지 겹치며 아직 착공되지 못했다.
현대건설은 공사비 인상과 관련해 “코로나 기간 외국인 근로자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건설 인건비가 치솟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시멘트·철근 같은 주요 자재 가격이 급등하는 등 현재 책정된 비용으로는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향후 협상단을 꾸려 현대건설과 공사비 협상에 돌입할 계획이다. 조합 관계자는 “다음 달 착공을 위해서는 조합과 시공사 간 물가상승률 및 설계변경을 반영한 공사비 약정 합의가 필요하다”며 “공사비 협상단 구성을 완료하고, 타 단지 사례를 참고하면서 현대건설과의 협상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입주 막바지 단계에 이른 인천시 부평구 청천동 일대 청천2구역 재개발사업지에서도 공사비를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 간 기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이 사업은 지하 3층~지상 43층, 총 5050가구 규모의 'e편한세상 부평그랑힐스'로 탈바꿈해 지난해 10월31일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최근 청천2구역 재개발사업의 시공사인 DL이앤씨는 최근 조합을 상대로 ‘공사대금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2020년 7월 착공 때보다 공사비가 1645억원이나 늘어났으니, 이를 지급해달라는 취지다.
양측은 도급계약서에 명시된 ‘착공 이후 물가변동은 반영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두고 충돌했다. 조합은 계약서에 이러한 특약이 명시되어 있는 만큼 물가변동분을 공사비에 반영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공사는 코로나19 등 ‘예상하기 어려운’ 사유로 인해 공사비가 늘었으니 이 특약을 적용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공사비를 둘러싸고 건설사와 정비사업조합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이유는 건설공사에 쓰이는 핵심 자재인 철근과 시멘트 가격이 천정부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건비 인상도 공사비 상승에 한 몫하고 있다. 단기간 급등한 공사비 증액에 대한 객관적 검증장치가 없어 조합과 시공사 간 분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을 하는 단지들도 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신청한 건수는 제도가 도입된 2019년 3건에서 2020년 13건, 2021년 22건, 2022년 32건, 2023년 30건으로 점차 증가했다.
공사비 분쟁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정부는 최근 ‘정비사업 표준공사계약서’를 내놨다. 공사비 산출 근거, 설계 변경 및 물가 변동에 따른 공사비 조정 기준 마련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제도 취지는 좋지만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이라는 점에서 실제 분쟁을 해결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설계변경이 자주 일어나는 정비사업 특성 상 설계도면도 나오기 전 세부내역서를 제출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면서 “표준계약서 사용 권고 정도를 넘어 공사비 급증 등을 즉각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