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김언한 기자]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을 늘리기 위해 '투트랙' 전략을 펼친다. 

엔비디아와 AMD 등 '큰 손'에는 고사양 HBM을 공급하고, 소규모 주문을 넣는 업체에는 HBM과 패키징 서비스를 동시 제안하는 전략을 가동한다. 이를 통해 HBM 점유율 1위인 SK하이닉스와의 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인공지능(AI) 가속기를 만드는 주문형반도체(ASIC) 기업에 턴키(일괄 수주·생산) 솔루션 공급을 공격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올해 3분기 삼성전자는 미국의 ASIC 기업 한 곳에 턴키 솔루션을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HBM과 관련해 SK하이닉스로부터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며 "삼성은 올해 HBM 캐파를 크게 늘리고 고객사를 공격적으로 확대해 업계 1위를 차지한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속기는 AI 서버에 들어가 데이터 처리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제품이다. AI 가속기와 관련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기업은 미국의 브로드컴과 마벨 등이다. 이들 기업은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클라우드 기업에 AI 가속기를 주문받아 이를 설계하고 공급한다. 여기에는 주로 중간 사양의 HBM이 사용된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해 데이터처리 성능을 높인 메모리반도체다. '챗GPT' 등 생성형 AI의 부상에 힘입어 HBM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턴키 솔루션은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사업부가 HBM을 생산하고, 파운드리사업부는 HBM과 로직칩을 최종 패키징하는 방식이다

현재 가장 고사양 HBM은 D램을 12단 적층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수요가 가장 많은 것은 4단 적층 제품인 것으로 파악된다. 고사양 HBM에 대한 수요는 주로 엔비디아나 AMD로부터 발생한다.

ASIC에 공급되는 HBM은 엔비디아나 AMD로 대표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전문기업용 제품 대비 수익성은 낮다. 하지만 물량 측면에서 ASIC 업체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와 관련해 브로드컴과 마벨의 입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JP모건에 따르면 고성능 ASIC 시장에서 브로드컴의 점유율은 약 35%, 마벨은 12% 정도다.

삼성전자는 대만 TSMC의 패키징 공간이 부족한 점을 파고 들어 ASIC 업체를 턴키 서비스 고객사로 끌어들일 수 있다. 턴키 서비스의 경우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할 수 없다. SK하이닉스가 HBM을 공급하면 로직칩과의 최종 패키징은 대만의 TSMC가 주로 담당한다. 

HBM과 로직칩을 하나의 기판에 올려 한 개의 칩처럼 만드는 TSMC의 기술 칩온웨이퍼온서브스트레이트(CoWoS)는 수요 대비 캐파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소규모 주문을 하는 업체에 공간을 할당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관계자는 "TSMC의 CoWoS 캐파가 부족한 상황인 만큼 삼성전자는 HBM 사업과 관련해 턴키 솔루션을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HBM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저사양과 중간 사양 제품이 삼성전자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AMD 같은 GPU 전문업체는 고사양 HBM으로 승부를 건다. 올해 하반기 5세대 제품인 'HBM3E'를 출시하는 한편 HBM 관련 생산능력(캐파)을 크게 늘린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HBM 고객사를 다변화하는 전략으로 SK하이닉스와의 점유율 격차를 좁혀나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는 30% 중반, 마이크론은 한자릿수 중반의 점유율을 가져간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 격차는 좀체로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엔비디아와 AMD의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삼성전자의 HBM은 SK하이닉스 대비 턱없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업계 일각에선 연말 삼성전자의 HBM 점유율이 SK하이닉스와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오는 터닝포인트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