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기로 했었지 사랑이 시작된 후
영원 하자고 했었지 그럴 줄 알았었고
독백하듯 묵직한 저음, 바리톤 고성현의 음색에 심장이 저릿하다. 그의 노래는 아득한 기억 넘어 스무 살 무렵, 내게도 영원할 줄 알았던 꿈같은 첫사랑을 소환한다.
지금은 사라진 80년대 명동의 고전음악 감상실 <필하모니>에 내 청춘의 비망록이 있다. 우연히 만난 남학생 H가 이끈 이 장소에서 나의 스무 살이 피어났다. 건축학도였지만 문학적 감각이 뛰어난 언어를 쓰는 그를 좋아했다.
서울의 가장 화려한 거리에서 문득 고요로 차단된 음악 감상실은 하나의 섬이었다. 사방 벽을 가득 메운 레코드판과 웅장한 사운드의 음향, 어두운 조명 아래 깊고 안락한 소파에 파묻혀 카라얀을 만나고 베토벤의 소나타 '열정'과 바흐의 '브란덴부르크'와 라흐마니노프를 들었다.
감상실로 들어서면 클래식 음악의 거장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안겨 왔다. 감미롭게 나를 압도하는 음률들에 숨죽이며 등록금 걱정과 불안한 미래, 돌잡이를 남기고 세상을 뜬 오빠, 엄마의 비통함과 아버지의 술주정 그 모든 것을 잊었다. 초라한 청춘을 보상해 주던 그곳은 나의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 소중한 가상의 유토피아였다.
무엇보다 감상실 입구의 메모꽂이 판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는 기쁨이라니. 딱지 모양으로 접은 메모지에는 어린 왕자와 장미 이야기, 설계도 같은 그의 스케치, 그리고 언제 이곳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들이 쓰여있곤 했다. 나도 그에게 메모를 남겨 놓았다.
전화가 없었기에 그곳에서 만나기도 했고 스치기도 했고 못 만나기도 했지만 언제나 감상실 메모로 연결되던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이어질 줄로만 알았다.
어느새 초록이 지나 앙상한 가지 아래
너 없이 쓸쓸히 낙엽을 밟으며 혼자 걷고 있네
인생이란 이런 건가 봐요 영원이란 것은 없는 것
그랬다. 다툼도 맹세도 없었지만, 어느 날 인가부터 우리는 엇갈렸고 그는 다시 필하모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와 걷던 삼청동의 노란 은행잎이 뒤덮인 거리를 혼자 걸었다.
사랑을 미워할 순 없잖아 모든 게 사랑인데
사랑이란 다 그러니까요 영원을 약속하지 마요
천둥과 우레와 같은 폭풍의 피아노 연주가 절정을 이룰 때 '영원을 약속하지 마요'라는 절규와 함께 바리톤 고성현의 <인생이란> 노래는 마침표를 찍는다. 숨이 멎을 듯한 클라이맥스 뒤의 적막이 가슴에 스미는 순간 그 쓸쓸함의 충만함. <인생이란> 무엇인지 알 것 같다. 온몸의 전율로 음악의 세계에 몰입한다. 노래가 주는 한 편의 드라마에서 치유를 얻는다.
예닐곱 살 무렵, 엄마는 어쩌자고 옆집 사는 미숙 언니의 옷을 빌려 입혀 나를 'KBS 어린이 노래자랑'에 데리고 가셨을까. 태어나고 보니 오빠가 다섯, 언니가 둘이었다. 가난한 집의 막내는 가족의 무지막지한 사랑 속에 자랐다. 고된 일상과 피로를 풀어내는 저녁 밥상 앞에서 곧잘 노래를 불렀다.
할머니를 뵈러 가는 열차 안에서도 나는 펄 씨스터즈의 '커피 한 잔'과 '슈사인 보이'를 부르곤 했다. 초록색 방울 모자를 쓰고 어깨를 흔들며 노래를 부를 때 어른들이 쥐여주던 지폐와 사탕에 맛을 들여서일까.
엄마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 방송국 무대에 설 때 제법 의기양양했던 것이다. 엄마는 유행가가 아닌 어린이다운 노래를 선곡했고 나는 손을 맞잡고 '아빠하고 나하고'를 불렀다.
리허설 때는 나름 잘 부른 것 같았는데 본선 무대에서는 긴장했는지 어린 마음에도 상을 못 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결과는 보기 좋게 낙방이었다.
엄마는 막내딸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고 집에 돌아와서는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노래는 우리 막내딸이 최고로 잘했어야. 방청객 박수 소리가 제일 컸당게. 근디 사회자가 어디 사느냐, 형제가 몇이냐 묻는디 야가 대답을 못해 부렀어. 아이고 아까워라. 그래서 떨어졌당게"
엄마의 언령술 덕일까. 나는 지금도 어린 날의 내가 상을 못 탄 것은 노래를 못해서가 아니고 자기소개에 답을 못 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
노래에 대한 갈증과 미련이 내 몸과 마음 깊이 숨어 있을지도 몰랐다. 후배가 초대한 아마추어 성악 발표회의 분위기가 음악을 갈망하는 무의식중의 나를 깊이 매료시켰다. 그것은 행복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나는 그 길을 찾아서 선뜻 성악 아카데미 등록을 했다. 드디어 음악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 샹송과 깐초네를 배우며 눈부신 선율의 작곡과 노랫말의 아름다움에 도취 되지만 언제나 나를 사로잡는 것은 한 음악이 탄생 되는 스토리와 사람이다. 음악 속에 나를 닮은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인생사가 펼쳐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영원을 약속하지 마요'라고 노래하는 바리톤의 클라이맥스에 겨워하며 나만의 유토피아인 노래에 젖고, 그 속에서 사랑을 추억한다.
◆박미경 주요 약력
△서울 출생 △월간문학(1993) 등단 △수필집<내 마음에 라라가 있다>, 인터뷰 에세이집 <박미경이 만난 우리시대작가17인><50 헌장>외 △동포문학상, 월간문학 동리상 등 수상 △현재 대표에세이 동인, 한국문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