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
박미경 수필가 연재 섬네일. 사진=데일리한국DB

몸이 아프면 엄마가 생각난다. 
마음이 아플 땐 더 그렇다. 속상하고 서러운 날엔 엄마를 부르며 울고 싶다. 엄마가 만든 소고기 뭇국에 맵싸한 겉절이를 얹어 먹고 나면 다시 기운을 차릴 것만 같다. 

아직도 꿈을 꾼다. 예닐곱 살의 내가 부엌에 묻혀있는 커다란 항아리의 물을 푸거나 엄마가 김장김치를 꺼내기 위해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을 숙이거나 하는 꿈이다. 엄마가 김치 항아리 속으로 들어갈까 봐 조바심을 내다가 꿈에서 깨면 어릴 적 부엌의 추억만으로 마음이 푸근해 진다.

부엌의 부뚜막 옆에는 늘 엄마의 정화수가 놓여있었다. 아침마다 깨끗한 물 한 사발을 올려놓고 가족들의 건강과 무탈을 기원하던 어머니. 구순을 바라보는 병약한 노인이 되어서도 자식들의 안부만이 인생의 전부였다. 아궁이 옆에 앉아 놀고 있으면 엄마는 맨손으로 무친 나물이나 국수를 돌돌 말아 내 입속에 쏘옥 넣어주셨다.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하다.

예전에는 이사 할 때 가장 먼저 할 일이 부엌에 솥을 거는 일이었다. 길일을 택해 솥을 걸고 그날 밤 이사 간 집에서 자면 살림살이를 옮겨오지 않았어도 이사를 한 것이라고 생각 했다. 부엌을 통해 일어나는 일련의 대소사는 삶의 가장 큰 화두였다. 어른들은 솥에서 밥을 풀 때 그 방향이 대문 쪽으로 향하면 밥을 '내 푸는 것'이고, 집 안쪽을 향하면 '들이 푼다'고 했다. 그래서 내 푸면 복이 나간다 하여 방향을 바꿀 정도로 부엌의 일상에서 가정의 길흉화복을 연결짓기도 했다. 

새벽부터 아침 준비를 하는 엄마를 따라 들어간 부엌에서 따뜻한 부뚜막 위에 앉아 엄마의 칼질 소리와 밥 뜸 들이는 냄새로 하루를 열었다. 일상의 평온함을 말해주는 시그널이었다. 부뚜막 위로 작은 쪽문이 하나 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안방 아랫목으로 연결되어 뜨거운 밥은 아랫목으로 직행하고 수시로 국과 반찬을 나를 수 있는 최단거리 통로가 어린 마음에도 신이 났었다.

부엌은 때로 예기치 않은 돌발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연탄가스를 마시고 동치미 국물로 살아났던 기억, 국자에 달고나를 해 먹다가 까맣게 그을려 혼쭐이 나기도 했고, 언니는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어 종아리에 데인 자국을 평생 갖게 되었다. 그것은 조왕신의 영역이었으니.

부엌은 엄마의 마음이 깃든 성소였다.
첫아이를 가졌을 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멸치를 진하게 우린 국물에 감자와 호박을 넣고 쫄깃한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떼어 만든 엄마의 수제비였다. 무와 꽁치를 가득 넣고 자박자박 끓여낸 생선조림과 연한 열무에 된장으로 맛을 낸 엄마표 열무 무침이 먹고 싶었다. 엄마의 가슴에는 사랑이라는 레시피가 가득하고 엄마의 손에는 가장 정밀한 정성이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나에게 안정과 활력을 주던 부엌의 따스한 기적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결혼한 딸의 집에서 생선을 굽자 하니 손사래를 친다. 아파트에 냄새가 밴다는 것이다. 삼겹살 역시 같은 이유다. 대부분 나가서 먹거나 주문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 자식들을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음식을 만들며 아이들에게 맛을 보여주고 "엄마가 최고"라는 찬사를 들을 때 가슴 뻐개지던 행복감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엄마들은 다이어트 때문에, 아이들은 야간 자율학습으로, 아빠들은 회식으로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일은 점점 없어진다. '인간은 그가 먹는 것 자체다'라고 한 독일 철학자 포이어바흐의 말이 새삼스럽다. 빨리 해치우는 식사는 사람의 성격마저도 급하게, 가볍게 만들지도 모른다.

부엌은 과연 진화한 것일까. 대리석으로 반짝이는 식탁과 조리대, 각종 요리기구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AI 냉장고는 열지 않아도 재료를 말해주고 요리 방법까지 안내한다. 최첨단 시스템으로 갖춰진 세련된 주방에서 왜 외로움이 묻어나는 걸까. TV는 종일 맛집 소개와 맛의 달인, 맛있는 녀석들, 줄 서는 식당, 맛있는 거 옆에 맛있는 거, 현기증이 날 정도로 먹는 문화 일색이다. 그런데도 주중에는 외식으로, 주말에는 배달 음식으로 위장을 채우는 사람들은 고독해 보인다.

한 가정의 온기는 부엌의 온기와 비례한다. 케네디가의 형제들은 밥상머리에서 남다른 교육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식사 중의 토론이나 리더십 교육보다 감동적인 것은 어머니 로즈가 항상 저녁 식사를 두 번씩 차렸다는 것이다. 한 번은 어린아이들을 위해서, 또 한 번은 좀 더 자란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따뜻하고 편안한 식탁을 위해 엄마는 얼마나 많은 부엌에서의 시간을 가졌을까. 음식을 만들며 어머니는 아이들의 나이에 맞는, 수준에 맞는 화제를 생각했다. 그 어머니의 시간, 부엌의 온기가 형제들을 성장시킨 것이다. 

이제 부엌은 사라졌다. 그러나 부엌은 인간의 본향이다.
황량한 아프리카 오지, 해 질 녘 누추한 초막에서 저녁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은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몽골 초원의 쓸쓸한 게르에서 돌 몇 개로 만든 화덕에 둘러앉은 가족이 행복해 보인다. 작은 냄비와 토기 몇 개가 전부일 부엌이 있고, 엄마는 그 날의 노고를 잠재울 소박한 음식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 살아 있는 공간으로 삶의 '냄새'와 '생기'를 불어 넣어주던 엄마의 부엌이 사무치게 그리운 요즘이다.

◆박미경 주요 약력
△서울 출생 △월간문학(1993) 등단 △수필집<내 마음에 라라가있다>, 인터뷰 에세이집 <박미경이 만난 우리시대작가17인><50 헌장>외 △동포문학상, 월간문학 동리상 등 수상 △현재 대표에세이 동인, 한국문인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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