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청소부가 직업인 그 남자, 잘생겼다. 지나치게 과묵하나 어쩐지 품격이 느껴진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햇살과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에 눈길을 준다. '도쿄 화장실(The Tokyo Toilet)'이라는 글자가 박힌 푸른 작업복을 입고 청소도구들을 챙겨 소형 용달차를 운전하며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듣는다.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Perfect Day)'가 감미롭다.
변기의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하기 위해 반사경까지 비춰가며 열심히 일한다. 공원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 후에 필름 카메라로 나무와 햇살을 찍기도 한다. 자전거로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기 전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을 읽는 모습이 보기 좋다.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나 코다 아야의 수필집 <나무>가 눈에 띈다. 그의 일상이 마치 한 그루의 고요한 나무 같다.
그의 과거는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청소노동자이고, 함께 하는 가족도 없이 최소한의 인간관계로 살아간다. 자연, 육체노동, 마음을 적시는 리듬과 책 한 구절이면 족한 이 남자의 평온과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충만한 루틴의 설정이 쉽게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다. 늘 흔들리고 무언가 버거운 내 일상의 상대적인 열패감, 혹은 질투심 때문일까. 직업에 대한 편견을 기분 좋게 해체 시키는 일상의 품격이 스크린에서 자주 배어 나온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는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리서치 기관 <세계 태도 조사>에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가를 설문 조사한 적이 있다. 17개 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가족이나 건강을 1위로 꼽았는데 한국인은 '물질적 풍요'가 1위를 차지했다. 가족, 사랑, 건강 또는 직업까지는 아니더라도 물질적 풍요를 최우선의 가치로 보는 한국인의 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내가 보내는 하루를 살펴보면 무엇을 중요하게 의식하며 사는지 알 수 있다. SNS나 인스타그램 속의 멋진 삶, 열정, 욕망, 성공 등으로 눈부신 타인들과 비교하는 습성은 우리에게 결핍감을 안겨준다. 결핍감의 근원인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자기 부정으로 이어지며, 순간 삶의 품격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여름의 절정에 가족휴가를 떠났다. 하루종일 수영장에서 지내다 보니 사용한 수건이 한가득 이다. 아이들은 물기만 몇 번 닦아 낸 수건을 빨래통에 던져버리고 카운터에 여분의 수건을 주문한다. 마음이 불편해지던 이유를 떠올린다.
영국에 사는 문우의 초대로 런던근교의 시골 마을 코츠월드 숙소에 머무를 때다. 친구는 퇴실할 때면 항상 사용한 수건과 사용하지 않은 수건을 분류해 두고 그 위에 'Used', 'Un used'라는 메모를 두고 나왔다. 청소하는 이를 위한 배려를 행동으로 보여주던 친구에게서 품격이 느껴졌다. 동행한 일행 모두 본받을 일이라고 흐뭇해 했다.
2년 전 부여여행의 마지막 날 풍경도 그랬다. 오랜 독서회 모임의 일행 중 ‘가장 젊은 죄’로 운전부터 모든 일정을 예약하고 인솔한 사람은 C였다. 점검을 마치고 숙소를 나오는데 C 역시 사용하지 않은 수건을 반듯하게 모아놓고 그 위에 1만 원을 가만히 올려둔다. 지방 펜션의 숙소에 놓는 팁 치고는 과한 금액이었다. C는 젊은 날 네팔에서 남편과 함께 가이드 일과 식당을 하며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귀농을 선택, 지방에서 검약하게 사는 주부였다. 그런 그녀가 선뜻 1만 원의 팁을 두고 나오다니... 어리둥절 해 하는 나를 보고 그녀가 웃었다.
"사실은 저 어릴 때 엄마가 호텔에서 청소일을 하셨어요. 그걸로 저희 가족이 먹고 살았거든요. 청소하는 분들이 엄마 같아서..." 그 날 C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건물주'에서 '성공한 유튜버'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심어줄 소중한 삶의 가치를 '물질적 풍요'로 전수해야 할 모양이다. 두려워 진다. 물질이 품격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을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다만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각자만의 세상을 가지고 살아간단다'
영화 속에서 히라야마가 들려주는 이 대화는 그의 단조롭고 특별함이 없는 세상이 가진 의미를 읽기에 충분하다. 아름답다. 게다가 그 고요한 일상의 품격이라니.
◆박미경 주요 약력
△서울 출생 △월간문학(1993) 등단 △수필집<내 마음에 라라가있다>, 인터뷰 에세이집 <박미경이 만난 우리시대작가17인><50 헌장>외 △동포문학상, 월간문학 동리상 등 수상 △현재 대표에세이 동인, 한국문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