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부터 보험금청구권 신탁 본격 시행
보험 연계 등 보험사 신탁 가입 유리
전문 인력·전담팀 등 역량 확보 돌입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가입자가 사망보험금을 금융사에 맡겨 관리·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시장 규모가 883조원에 달하는 만큼 '미래 먹거리'로 평가받으면서 시장 공략을 위한 보험사들 움직임 역시 본격화되고 있다.
보험사뿐 아니라 은행 등 타 금융사에서도 신탁 가입을 취급하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사들 역시 전문가를 채용하고 라이선스 확보를 통한 신탁조직 재정비 등 시장 선점을 위한 준비에 적극적으로 돌입했다. 다만 일각에선 장기적으로 사망보험뿐 아니라 상해·질병보험의 보험금청구권도 신탁재산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부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은 생명보험계약의 사망보험금을 위탁자(보험계약자)가 신탁계약을 통해 미리 정해 놓은 조건에 따라 수익자에게 분할 지급할 수 있는 구조의 상품이다.
이번 개정안 시행을 통해 3000만원 이상 일반사망 보장은 보험 수익자를 신탁업자로 변경하고 신탁 수익자를 배우자·직계존비속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보험금청구권신탁의 문이 열리게 됐다. 다만 재해·질병 사망 등 특약사항 보험금청구권은 신탁이 불가하다. 계약 특성상 보험계약대출도 신탁이 안 된다.
현재 국내 보험사 중 종합재산신탁업 자격을 취득한 곳은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흥국생명·미래에셋생명 등 생명보험사 5곳이다. 종합재산신탁은 하나의 계약으로 금전·부동산·유가증권·특수재산 등 여러 유형의 재산을 함께 수탁해 통합 관리·운영할 수 있는 서비스다. 삼성화재와 KB손해보험 등 손해보험사 2곳은 금전신탁만 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보험계약자가 사망하면 보험금이 유족이나 수익자에게 한 번에 지급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시행령 개정으로 신탁을 통한 '맞춤형 설계'가 가능해졌다"며 "자녀를 위한 투자로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 고객 확보 위해 연이은 상품 출시
보험사들은 보험금청구권 신탁 도입과 함께 연이어 계약을 진행하고 고객 확보에 나섰다. 현재까지 은행 2건, 보험사 2건 등 총 4건의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은 보험금청구권 신탁 출시 당일인 지난 12일 보험사 최초로 1호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생명에 따르면 1호 계약은 미성년 자녀를 둔 50대 여성 CEO로 사망보험금 20억원을 신탁 재산으로 맡겼다. 자녀가 35세 되기 전까지는 보험금 이자만 지급하다가 35세, 40세에 되는 해에 보험금 50%씩 지급하도록 설계했다.
삼성생명은 "사망 보장이라는 보험 본업과 고객 맞춤형 보험금 지급설계라는 신탁업이 연계돼 '생명보험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고객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 전문가 그룹과 함께 최적의 해결책을 제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흥국생명도 '내가족안심상속종신보험'을 출시하고 1호 계약을 체결했다. 기업 임원인 50대 남성은 사망보험금 5억원에 대해 자녀가 40세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이자만 지급하다가 자녀가 40세, 45세가 되는 해 보험금의 50%씩 지급하도록 했다.
미래에셋생명 역시 신탁 상품을 선보였다. 신탁계약 체결 후 위탁자(보험계약자)가 수탁자(미래에셋생명)를 생명보험계약의 사망 시 수익자로 지정하면 수탁자(미래에셋생명)는 사망보험금을 청구·수령 및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교보생명과 한화생명도 기존 상품과 연계된 방식으로 보험금청구권 신탁 서비스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아직 모든 보험사가 서비스를 개시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형 생보사가 관련 자격을 취득한 만큼 곧 손쉽게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본인이 기존에 가입한 보험사는 물론 신탁 서비스를 받기 위한 파생상품도 연이어 출시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883조원 선점 위해 업계·보험사 대규모 지원
보험사들이 신탁 가입과 관련해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는 이유는 보험금청구권 신탁 서비스가 '미래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보험사들은 신탁업을 가장 꾸준히 영위해 왔지만 제대로 된 성장 기회를 잡지 못하면서 수탁고가 계속해서 위축됐다. 금융투자협회 통계에서 지난 8월 기준 이들 보험사 수탁고는 24조9900억원으로 전체(1361조원)의 1.8% 수준이다.
이에 보험사들은 이번 개정안 시행을 계기로 본격적인 고객 확보를 통해 보험금청구권 신탁 서비스를 보험사의 주축 산업으로 발전시킬 예정이다. 보험업계 역시 올 상반기 기준 약 883조원에 달하는 생보사 사망 담보 계약 잔액을 선점하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종신보험을 보유하고 있는 보험업계가 선점효과를 누릴 것이란 예측도 나오면서 고객 확보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보험사뿐 아니라 다른 금융사들 역시 800조원이 넘는 신탁 서비스 시장을 노리고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하나은행은 지난 12일 은행권 최초로 1호, 2호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러한 경쟁에 대비해 보험사들은 전문가를 통한 전문성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의 경우 다른 재산신탁과 달리 장기 상품인 보험의 특성상 회사의 안정성과 금융상품에 대한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컨설팅 역량이 중요하다.
삼성생명은 상속·증여, 투자, 세무 등 금융 전문가로 구성된 WM(Wealth Management)팀을 통해 고객에게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고 있으며 흥국생명도 상속·증여, 투자, 세무 등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팀(TFT)을 구성하고 신상품 개발과 운영 관리 및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전문 인력 충원은 물론 관련 팀을 구성하고 있다"며 "이번 개정안 시행은 보험사가 보험만 판매하는 것이 아닌 종합 금융 컨설팅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