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가입자 재산 따지지 않고 의사에게 채권자대위 소송 가능 주장
[데일리한국 박재찬 기자] 의사가 환자에게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은 시술을 했다면 환자에게 실손보험금을 이미 지급한 보험사가 곧장 의사에게 보험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지를 놓고 대법원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지난 17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실손보험을 취급하는 보험사가 맘모톰 시술을 한 의사를 상대로 낸 실손보험금 반환청구사건 공개변론을 열었다.
맘모톰 시술은 침이 달린 맘모톰 장비로 유방 양성 종양을 흡입해 제거하는 방식이다. 원래 종양 부위 조직을 소량 채취하는 검사 장비로 개발됐지만 점차 양성 종양 제거술로 의료 현장에서 쓰였다. 다만 과거 이 시술법은 안정성과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아 진료비 청구가 제한되는 ‘임의비급여 진료’였다. 검증 문턱을 몇 년 동안 넘지 못하다가 2019년 7월께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했다.
보험사들은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기 전 맘모톰 시술을 하고 의사가 받은 진료비는 부당이득이므로 진료비(실손보험금)를 돌려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인가 전 맘모톰 시술에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1000억원이 넘는 규모로 추정됐다.
법률관계를 따져보면 환자는 의사에게 납부한 진료비만큼의 ‘부당이득반환 채권’을 갖고, 보험사는 환자에 대해 실손보험금 상당의 부당이득반환 채권을 갖는다. 따라서 보험사는 보험금을 받아 간 환자에게 보험금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을 뿐이지 의사를 상대로 진료비를 반환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에서는 보험사가 환자를 건너뛰고 의사에게 직접 진료비 반환을 요구했다. 이런 ‘채권자대위권’(채무자가 가진 채권을 대신 행사하는 권리)이 성립하려면 우선 환자의 재산이 충분치 않아 보험사에 보험금을 돌려줄 수 없는 ‘무자력(자금력이 없음)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의 통상적인 법리 해석이었다.
이 같은 무자력 요건이 필요한지를 놓고 양측 변호사와 법률 전문가들이 내놓은 의견은 엇갈렸다.
원고인 보험사 측 대리인들은 법대로 보험사가 환자에게 보험금 반환 청구를 하고 환자는 의사를 상대로 진료비 반환 청구를 하면 소송 건수가 너무 많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실손보험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도 보험 가입자들의 재산을 일일이 따지지 않고 의사들에게 채권자대위 소송을 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수곤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이 무자력을 요구하지 않는 때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상황이고, 이번 사건에서 보험금 반환청구권과 진료비 반환청구권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없어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피고 의사 측의 법률 대리인들은 맘모톰 시술이 과거 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던 것은 자료 미비 때문이지 안전성이나 유효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재는 맘모톰 시술이 실손보험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기술 인증을 못 받았다고 해서 환자의 동의를 받고 이뤄졌던 시술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보험사들의 진료비 반환 요구가 애초에 합당하지 않다는 취지다.
보험사가 환자를 건너뛰고 의사에게서 직접 진료비를 반환받을 수 있는지를 두고 전국적으로 수년 동안 진행된 하급심의 결론은 엇갈렸다. 이날 대법원이 심리한 사건 두 건은 2심에서 정반대의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이날 제시된 양측의 변론을 따져본 뒤 조만간 선고기일을 정할 방침이다.
대법원이 소부 사건의 공개변론을 연 것은 2020년 조영남씨 '그림 대작' 사건 이후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