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역할 변화…양극화 현상 심화될수도
[데일리한국 정우교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일 "이번 인플레이션이 진정된 이후 한국을 비롯한 일부 신흥국에서 저물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창용 총재는 이날 '2022 BOK 국제컨퍼런스' 개회사에서 이같이 밝히며 "저물가, 저성장이 환경이 도래할 경우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이 총재는 먼저 중앙은행의 역할은 그동안 금융·경제 위기 등을 거치며 변화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1930년대 대공황을 계기로 통화정책의 거시경제 안정화 기능이 부각됐으며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면서 물가안정이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고용이나 성장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다"면서 "월가점령시위에서 보듯 극심한 경기침체, 고용부진, 소득격차 확대 등이 중앙은행에 대한 비난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물가의 지속적인 목표수준 하회는 정책체계로서의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켰다"며"정책금리가 실효하한에 다다르자 중앙은행은 양적완화 등 비전통적 정책수단까지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코로나 위기 이후에는 경제 양극화가 확대되고 디지털·친환경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 범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더욱 넓어졌다"며 "중앙은행은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재정정책, 구조개혁 등 경제정책 전반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조율해 나가는데 보다 중점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확장적 재정정책, 저금리·비전통적 통화정책으로 쌓인 수요압력, 팬데믹·전쟁 등으로 인한 공급병목 등으로 1970년대와 같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있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먼저 "현재 디지털혁신, 기후변화 대응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면서 "현재 각국 중앙은행도 CBDC 도입을 추진하고 있거나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녹색성장을 위해서도 정책수단의 개발·이행을 구체화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팬데믹의 충격과 회복 과정에서 발생한 양극화현상이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있으나 다만 소득 양극화와 부문간 비대칭적 경제충격의 문제들을 과연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번 인플레이션이 진정된 이후 한국, 태국 등 인구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부 신흥국에서 저물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며 "지난 10년 간 중앙은행의 실제 자산규모 변화를 보면 신흥국은 완화적 통화정책을 누릴 여유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총재에 따르면 G7국가의 중앙은행 자산규모는 2007~2020년 중 GDP 대비 3.8%에서 31.0%로 크게 늘어났으나 신흥국은 4.0%에서 6.2%로 증가했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흥국의 경기부진 정도가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축통화국이 아니라는 점도 신흥국 입장에서 재정이나 통화정책을 마냥 확장적으로 운용할 수 없었던 주요 제약요인도 있었다"며 "신흥국은 선진국처럼 비전통적 정책수단 활용은 자칫 통화가치 절하 기대로 이어져 자본유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신흥국은 인플레이션 기대 안착에 있어서도 신뢰성에 제약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며 "이에 따라 통화정책 운용을 보다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해야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신흥국의 경우 그간 확장적 재정·통화정책, 국채 직접 인수 등에 나섰음에도 심각한 환율 절하나 자본유출이 초래되지 않았다"며 "이는 신흥국의 자산매입 등 비전통적 정책수단들이 금융위기나 코로나 위기 등 글로벌 공통충격에 대한 전세계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졌고 선진국에서 더 큰 규모의 자산매입에 나섰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총재는 "향후 개별 신흥국이 구조적 저성장 위험에 직면해 홀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경우 같은 결과가 나타날지는 의문이다"며 글로벌 유동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과정과 비슷한 수준의 확장적 정책이 다시 이뤄진다면 환율, 자본흐름,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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