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안병용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손발에 묶였던 족쇄가 풀렸다. 경영 최전선에서 활발한 행보가 가능해졌다. 재계 1위 삼성의 경영 정상화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정부가 이 부회장의 복권 배경으로 언급했던 ‘위기의 국가경제’에 구원투수로 등판할지 주목된다. 이를 위해 지난 10년간 삼성에서 바뀌지 않았던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이 집중 논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하게 회장 직함을 달고 있지 않다. 2012년 12월 승진한 뒤 10년째 부회장직을 유지 중이다. 다만 시기가 문제일 뿐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이 부회장은 현재 미등기 임원 상태다. 부친인 고(故) 이건희 회장의 건강이 악화된 2014년 이후 사실상 총수 역할을 맡아왔지만, 국정농단 사건 관련 수사와 재판이 시작된 2017년부터 5년째 무보수 경영을 이어왔다.
업계에선 복권 받은 이 부회장이 올 연말 등기 임원과 회장에 선임될 것으로 관측한다. 일각에선 삼성전자 창립기념일인 11월1일을 유력한 시기로 꼽기도 한다. 혹은 사장단 정기 인사 시즌인 12월도 거론된다. 이 같은 전망이 순조롭게 이어지면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회장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가능성은 절반이다. ‘사법 리스크’가 걸림돌이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복권을 받아 취업제한에서 해방됐다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계열사 부당 합병과 회계 부정 등의 혐의로 여전히 재판을 받는 신세다. 복권은 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만 영향을 미친다. 별도로 진행 중인 재판에는 아무 효력이 없다. 복권에도 이 부회장이 온전히 경영 활동에 집중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시선이 남는 이유다. ‘완전한 경영 복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삼성 수뇌부에서 이 부회장의 승진 판단을 내릴 경우, 임직원 스킨십을 거쳐 현장 경영을 통해 차츰 경영 보폭을 넓혀가는 방법이 유력하다. 이 부회장의 평판은 재벌 총수답지 않게 소탈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회사 구내식당을 찾아 직원들과 식사하고 셀카를 찍는 모습은 이미 여러 차례 포착됐다. 최근엔 이 부회장이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고 종업원들에게 골고루 배분될 수 있도록 건넨 팁 액수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삼성은 이 부회장의 승진 얘기에 일체의 일언반구도 없다.
경영 보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는 조직개편 등 당장의 큰 변화보다는 계획된 투자와 경영 활동을 제대로 이행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발표한 450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 계획 이행을 점검하고 일자리 창출 계획 진행 상황도 꼼꼼히 살피는 일부터 시작할 전망이다.
특히 대형 인수합병(M&A)이 가시화될 공산이 크다. 삼성의 대형 M&A는 2016년 11월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9조4000억원에 인수한 이후 멈춘 상태다. 이 부회장의 M&A 행보는 인공지능(AI), 로봇, 차세대통신 등 미래 신사업 분야가 최우선에서 검토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 경우 지난해 11월 20조원의 미국 텍사스 파운드리 공장 증설안에 사인한 데 이어 추가적인 ‘선물 보따리’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부산엑스포) 유치 지원에도 힘을 보탤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두루 활용하며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란 전망이다. 고 이건희 회장도 지난 2009년 사면 뒤 해외 각국을 돌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에 발 벗고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경영 행보와 회장 승진은 별도의 문제다. 오히려 부당 합병 의혹 재판이 회장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이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해방됐다지만 이 부회장에게 승계방식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 부회장이 지난 2020년 ‘4세 경영 포기’라는 결단을 내린 것도 부당 합병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이 부회장은 여전히 한 주에 1~2차례 공판 출석한다. 특별복권이 발표된 지난 12일에도 재판에 출석했다. 남은 사건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또 다시 취업 제한 등 경영 활동에 제약이 생길 우려가 있다. 공판 기일이 내년 1월13일까지 지정돼 있는 만큼, 1심 판결은 내년 초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적어도 향후 2년은 사법리스크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며 회장 승진 논의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봤다.
‘이재용 회장’ 체제의 삼성 조각 완성은 남은 재판의 과정과 결론에 달린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