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정부가 간접적으로라도 나서게 되면 공신력도 생기고, 심사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어"
[데일리한국 박현영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이 EU, 미국, 일본 3개국 승인만 남겨 놓은 가운데, 일각에서는 ‘기업결합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U가 기업결합 후 경쟁감소를 우려하는 심사보고서를 발표한 후, 미국까지 시장 독점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이에 업계에선 경쟁당국의 경쟁감소 우려를 해소시키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은 지난 12일(현지 시각)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원유석 아시아나항공 대표 등과 함께 미 법무부(DOJ) 차관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미 법무부 차관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시장 독점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했다. 또 독점을 해소할 대체 항공사를 찾아오라고 요구했다.
대한항공은 DOJ측이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며, 타임라인도 아직 미정이고 당사와 지속 논의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전달 받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EU 경쟁당국 역시 중간심사보고서(SO)를 통해 ‘양사 기업결합 시 유럽 일부 노선에서 경쟁제한 가능성이 있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EU 경쟁당국은 “양사 합병 시 한국과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간 4개 노선에서 여객과 화물 운송시장에서 가격 상승과 서비스 질 하락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결국 미국과 EU경쟁당국 모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후 경쟁감소를 우려하며 심사 승인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아시아나항공 인수·통합을 위해) 국토부, 외교부, 산업은행 등 관련 정부기관이 함께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국토부는 아직 기업결합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은 적이 없다. 오히려 일각에선 국토부가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며 '뒷짐'만 지고 있다는 불만까지 나오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6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은) 그동안 국토부로서 당연히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이슈였다”며 “국토부는 자본 잠식 상태인 아시아나항공의 채권자인 산업은행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원 장관은 “미국이나 EU에서 제동이 걸려 결국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산은과 공정위와 함께 다시 새로운 차원의 국가정책을 검토해야 할 수 있다”며 “그 경우에도 국민을 위해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게 하겠다. 아직은 예단하기에 섣부른 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항공업계에선 대한항공이 시장 독점을 위한 것이 아닌, 아시아나항공을 소유하고 있던 금호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인해 합병에 나선 것인데 국토부가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대한항공이 경쟁당국에 너무 많은 슬롯을 반환할 경우 국부 유출이 심각해진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여부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닌 한국의 전체 항공산업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정부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원희룡 장관은 지난 3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결합심사 과정에서의 손실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가피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소극적인 입장을 내놨다.
원 장관은 이어 “대한항공이 실질적 경쟁 역량이 있는 노선을 제시하기 위해 정말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엄격한 시선으로 보려 한다"며 “대한항공이 합병 심사를 통과하고 나서 입장이 돌변할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대한항공을 직접 지원하지는 않더라도 간접적으로나마 경쟁당국에 한국 정부의 입장만 전달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윤문길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대한항공을 직접적으로 지원해 대내외적으로 문제가 생기게 할 필요가 없다. 단지 공식입장으로 경쟁당국이 우려하는 경쟁감소만 해소시켜 주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면서 “정부가 나서게 되면 공신력도 생기고, 심사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윤 교수는 또 "국토부가 ‘우리 정부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이 경쟁감소로 이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어쩔 수 없이 양사가 통합하게 됐지만 추가 장거리 항공사 육성 등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라는 정도의 입장만 발표해도 기업결합 심사가 크게 진척될 것"이라고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