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예치 대응 위해 리스크에도 금리 높여 판매
시장 불안감 우려한 금융당국도 예의주시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지난해 2금융권이 판매한 5~6%대 고금리 예적금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면서 저축은행들이 고심에 빠졌다. 고객 예금 재예치에 대응하기 위해 연 4.6% 금리 정기예금 상품을 다시 내놨지만 고금리 리스크에 따른 이자 비용 부담이 우려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들은 매년 반복되고 있는 유동성 부족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금융당국 역시 정기예금 금리가 6% 넘게 치솟았던 지난해 말처럼 과도한 출혈 경쟁으로 인한 시장의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이러한 당국의 기조에 저축은행도 동참하는 분위기지만 명확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 만큼 '금리 눈치 싸움'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23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체 저축은행의 12개월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4.23%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22일(연 4.18%)보다 0.05%포인트 오른 수치다. 지난 7월 연 4%로 올라선 저축은행 예금 평균 금리는 4개월 연속 오름세다.
각 저축은행 정기예금 상품의 금리 상단 역시 4.6%대에 머무르고 있다.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4.6%대를 기록한 건 올해 2월 이후 8개월여 만으로 현재 정기예금 최고 금리 상품은 더블저축은행의 정기예금(인터넷뱅킹, 스마트뱅킹)으로 4.61%이다. CK·동양·머스트삼일 저축은행도 연 4.6% 정기예금을 제공하고 있다. 전체 357개 예금상품 중 연 4.5%대 이상의 상품이 총 61개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 발맞춰 주요 저축은행도 일제히 정기예금 금리를 올렸다. 업계 1위 SBI저축은행은 지난달 20일까지 연 금리 3.6%로 정기예금을 판매했지만 현재는 연 금리 4.0%에 상품을 운영 중이며 OK저축은행 역시 'OK정기예금' 금리를 지난달까지 4.11%로 운영했으나 이달 5일 4.21%로 0.1%p 인상해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각 저축은행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한 곳이 올리면 자연스럽게 전체 저축은행들이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예금 재예치 유도 위해 금리 올려
저축은행이 갑작스럽게 금리를 올리는 이유는 지난해 고금리 시기 당시 정기예금에 가입했던 가입자들의 만기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사들은 지난해 9월 말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하자 채권 시장 자금 조달을 위해 예금 수신 금리를 높였다. 지난해 10월31일 저축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5.4%로, 같은 달 1일 3.85%에서 1.55%p 급등했다. 당시 저축은행이 갑작스럽게 금리를 올리면서 예금 수요가 쏠렸는데 그때 개설된 계좌가 1년이 지나 만기 도래를 앞두고 있다.
업계에선 올해 4분기 예금 만기 규모가 1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예금 만기로 인한 대규모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저축은행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금리를 과거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리고 고객의 재예치를 유도 중이다.
은행의 금리 인상도 저축은행의 예금금리를 끌어올리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저축은행은 은행보다 1.0%p 이상 높은 금리를 제공해 경쟁력을 확보한다. 현재 전국 19개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최고 금리는 4.35%다. 은행의 정기예금 상품 37개 중 4% 이상의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은 과반이 넘는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금리가 은행보다 높아야 사람들이 찾는다"며 "기준금리 동결이 이어지고 있지만 추후 상황은 예측할 수 없어 금리 상승에 대한 예측은 내리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 조달 비용 상승 증가로 수익성 악화
대내외적 원인으로 인한 예금금리 상승은 저축은행의 '아킬레스건'으로 변하고 있다. 예금금리 인상 경쟁은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대출금리 상승으로 귀결되고 저축은행의 수익성 역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전국 79개 저축은행은 올해 상반기 96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 당시 8956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순이익 규모가 1조원 가까이 감소했지만 금리 경쟁을 포기하지 못하면서 '제 살 깎아먹기'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당국도 금융권의 지나친 금리 경쟁이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머니 무브'를 촉발할 수 있는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어 금리 수준을 일 단위로 모니터링하는 등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20일 금융감독원, 금융협회 등과 함께 금융시장 현안 점검·소통 회의를 열고 "지난해 4분기와 같은 자본시장 불안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 방지를 위해 추진하는 규제 유연화 조치들이 금융사의 자산·외형 확대 경쟁의 수단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올해는 지난해만큼의 극심한 고금리 경쟁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상반기 9년 만의 적자라는 충격적 성적표를 받은 저축은행업계는 과도한 출혈 경쟁을 자제하자는 분위기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수익성 악화에 수신 금리 상승으로 늘어난 이자 비용은 큰 리스크다"라며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자는 분위기지만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지난해 연말과 같은 상황은 또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