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짧을수록 금리 높아지는 현상
마케팅·만기 분산 등 다양한 이유
장기금리 하락은 침체 이어질 수도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일부 저축은행에서 6개월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1년 만기 금리를 넘어서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1년만에 다시 나타났다. 6개월 단위로 이자를 지급하는 상품도 속속 출시되면서 저축은행들은 장기 예금보다는 단기 예금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도 이러한 금리 역전에 대해 고금리 기조 속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저축은행들은 장단기 예금의 금리가 역전된 건 만기가 도래한 자금을 재유치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일 뿐이라고 설명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경기침체 신호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추후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 금융사들이 장기상품에 대해 금리를 높게 책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9일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현재 판매 중인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중 6개월 만기 금리가 1년 만기 금리보다 높은 상품은 총 10개로 집계됐다. 30개 상품은 6개월 금리와 1년 금리가 동일했다.
저축은행별로 보면 OSB저축은행의 정기예금의 경우 6개월(4.50%) 예금 금리가 12개월(4.10%), 24개월(3.70%)보다 높았다. 조은저축은행도 6개월(4.40%) 단기 상품의 금리가 12개월(4.30%)보다 높았으며 스타·스마트·대신·HB·솔브레인저축은행의 정기예금도 6개월 단기예금의 금리가 더 높았다. OK·페퍼저축은행 등 주요 저축은행은 6개월 만기와 1~3년 만기의 금리가 동일하거나 가입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한 정기예금을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단기금리 역전은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예금은 일반적으로 만기가 긴 상품이 만기가 짧은 상품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한다. 긴 기간에 돈이 묶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기간 프리미엄이 더해져서다.
업계에서도 6개월 금리가 1년 금리를 앞서거나 두 기간의 금리가 똑같은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한다. 올해 초만 해도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중 6개월 금리가 1년 금리를 앞서는 상품은 3개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벌써 3배 이상의 상품의 금리가 역전됐다.
1년 전에도 저축은행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발생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저축은행 정기예금 1년 평균 금리가 2년 평균 금리를 넘어섰다. 작년 10월 1월 기준 1년 평균 금리는 3.85%로 2년 평균 금리인 3.82%보다 0.03%p 높았지만 올해 들어 금리 격차는 더 커졌다. 이달 1일 기준 1년 평균 금리는 4.12%로 2년 평균 금리인 3.45%보다 0.67%p 높았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일부 저축은행의 금리가 역행하는 것에 대해선 인지를 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섣부르게 금리를 올리진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수요·마케팅 등 다양한 이유로 경쟁
저축은행들이 단기 금리를 올리는 이유로는 △수요 증가 △마케팅 전략 △예금 만기 분산 △역마진 우려 등이 꼽힌다. 최근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준금리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단기간 내 투자 이익을 실현하려는 사람이 늘어나자 저축은행 간 경쟁이 붙은 영향이다.
고금리 장기화에 발맞춘 은행권 마케팅 전략도 금리 역전에 도화선이 됐다. 고금리 기조가 계속되자 고객들이 은행에 길게 돈을 맡기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했고 이에 맞춰 저축은행들도 관련 상품을 속속 내놨기 때문이다.
또 주요 조달 수단의 만기를 분산하려는 목적도 있다. 저축은행은 상품군이 다양한 은행과 달리 정기예금으로 대부분의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만기가 한꺼번에 도래할 경우 갑작스럽게 유동성이 부족해져 파산 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한 방안 중 하나가 단기 예금 금리 상승이다.
이에 저축은행은 올해 들어 회전식 정기예금을 선제적으로 출시하며 만기 분산에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회전식 정기예금은 3·6개월 등의 단위로 금리가 바뀌며 매달 혹은 금리 변동 주기에 따라 이자를 지급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향후 발생한 역마진 가능성 역시 저축은행들이 단기 상품 금리를 올리는 이유다. 금융사들이 앞다퉈 수신 금리 인상 경쟁에 나선 와중에 장기 상품에도 고금리를 주면 추후 마진이 남지 않을 수 있다. 이에 저축은행들은 수신 금고를 대부분 1년짜리 상품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수신 금리에 대한 불안정성이 있기 때문에 장기 상품을 고금리로 운영하는 데 부담이 있다"며 "저축은행의 경우 예·적금으로만 자금을 조달하다 보니 리스크가 큰 선택은 줄이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 장기금리 하락은 경기 침체 신호탄 될 수도
일각에선 이러한 저축은행의 장단기 예금 금리 역전이 '경기 침체'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전문가들도 장기금리는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결정되는데 경기가 좋지 않으면 시장 참여자들의 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며 장기금리가 하락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기 침체 전조로 해석된다.
채권시장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채권시장에서는 돈을 오래 빌려줄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금리가 높게 책정된다. 그러나 경기 전망이 부정적이면 위험 회피를 위해 장기채권 금리가 낮아진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들이 장기상품에 금리를 높게 책정하지 않는 이유는 경제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라며 "고금리 기조에도 더 많은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단기 상품에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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