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코너링에 의외의 박력있는 사운드 인상적
[데일리한국 안효문 기자] 내연기관차의 자리를 전동화 차량이 채워간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전기모터는 엔진보다 손쉽게 큰 힘을 발휘한다. 보급형 전기차가 수억원을 호가하는 스포츠카보다 가속력이 더 좋은 경우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달리는 즐거움은 동력계의 성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달리고, 서고, 도는 모든 과정에서 오는 미묘한 느낌이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전기차가 이같은 운전자와의 교감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한다.
BMW는 운전의 즐거움을 중요시 여기는 브랜드다. 적극적으로 전동화 전략을 추진하지만, 달리는 재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 전동화 부문의 신차에서도 이런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전기 세단의 대표 주자 i4와 고성능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SUV XM을 인천 영종도 소재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시승하며 전동화 차량의 재미를 확인했다.
먼저 운전석에 오른 차는 ‘i4 e드라이브 40’이다. 차이름에서 i는 BMW의 전기차, 4는 준중형급 크기, e드라이브는 전기모터 탑재를 의미한다. 40은 과거 다운사이징(터보 기술을 활용해 성능은 유지하면서 엔진 배기량을 줄여 기름소비를 줄이는 기술) 이전 4리터급 엔진과 유사한 성능을 발휘한다는 표시다.
i4는 BMW 내연기관차 중에서도 유려한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4시리즈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BMW 4시리즈는 전기차로 넘어와서도 4도어 쿠페의 우아하고 역동적인 실루엣, 장거리 여행에 특화된 공간활용성 등을 잃지 않았다.
i4 e드라이브 40은 하나의 전기모터가 뒷바퀴를 굴리는 후륜구동차다. 제원표 상 성능은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3.85㎏f·m, 0→100㎞/h 도달시간 5.7초, 안전 최고속도 190㎞/h다. 배터리 용량은 84㎾h, 1회 충전 후 주행가능거리는 복합 429㎞로 인증 받았다.
서킷에서 만난 i4는 힘이 넘치지만 친절했다. 첫 만남에서도 큰 부담 없이 2.6㎞의 서킷을 달릴 수 있었다. 넉넉한 힘을 맘껏 뿌리면서 몸놀림은 운전자의 의도를 잘 따라와 손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배터리를 넉넉하게 탑재한 결과 공차 중량이 내연기관 4시리즈보다 300~500㎏이나 무거운 2110㎏이나 나간다. 하지만 가속 페달을 밟자마자 뿜어져나오는 강력한 토크 덕분에 거동이 가뿐하다. 묵직한 배터리가 차 바닥에 깔린 덕분에 무게중심이 낮다. 빡빡한 회전 구간을 차가 착 깔려 돌아가는 느낌이 좋다. 고성능 후륜구동차에서 나타나는 오버스티어(운전자가 의도한 것보다 차가 더 많이 회전하는 현상)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차를 다루기 어렵지 않다는 의미다.
BMW 드라이빙 센터의 직선구간은 600m, 노면상태가 좋지 않은 탓에 선행차는 코너 앞 200m부터 브레이크를 밟았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는 구간이 400m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계기판에 표시되는 숫자는 손쉽게 170㎞/h를 돌파했다.
3바퀴를 달린 뒤 i4 M50으로 옮겨탔다. 같은 i4지만 차명에 BMW의 고성능 부문을 의미하는 ‘M’이 붙은 만큼 보다 역동성에 중점을 둔 차다. ‘50’은 과거 BMW의 5리터 엔진에 준하는 성능을 갖췄다는 뜻이다.
구동방식부터 다르다. i4 M50은 앞뒤축에 각각 모터를 장착한 사륜구동이다. 앞축엔 258마력, 뒤축엔 313마력의 모터를 배치해 시스템 통합 최고출력 544마력, 최대토크 81.07㎏f·m, 0→100㎞/h 가속시간 3.9초 등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대신 주행거리는 i4 e드라이브 40보다 짧다. 배터리 용량은 동일하지만 완충 후 주행가능거리는 378㎞다.
앞차보다 스티어링 휠이 두툼하고 ‘M’ 고유의 디자인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된 점이 눈에 띈다. 전원 버튼을 눌러 차를 깨우니 묵직한 저음의 웰컴 사운드가 반긴다. 마치 고배기량 스포츠카처럼 '그르릉' 대며 빨리 서킷을 달리라고 재촉하는 듯 하다.
제원표상 숫자 이상으로 펀치력이 대단하다. 가속페달에 힘을 싣자 차가 말 그대로 튀어나간다. 선행차와 간격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써야 할 정도다. 공도에선 이 차의 성능을 오롯이 다 끌어낼 상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륜구동인만큼 접지력이나 중심이동이 더 안정적이다. 코너를 더 과감히 공략할 수 있다. 한계점이 상당히 높아 회전구간 진입속도를 덜 줄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하지만 아무리 사륜구동이어도 물리적인 한계는 있다. 페이스를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끌어올리자 차가 ‘드르르’ 떨리면서 여지 없이 각종 전자장비들이 개입한다. 움찔대며 자세를 추스리는 느낌이 좋진 않지만 ‘여기가 한계점이다’는 신호라 수긍하게 된다.
더 빨리 달리고 싶다는 욕심은 XM에 타면서 한층 더 커졌다. X는 BMW 브랜드의 SUV 라인업을 의미하고, M은 고성능을 상징한다. XM은 BMW가 40여년 만에 선보이는 고성능 SUV이자 M 최초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적용한 차다. 출시 전부터 ‘초고성능’을 강조한 차인 만큼 시승 전부터 기대가 컸다.
XM은 V8 4.4ℓ M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과 전기모터를 심장에 품었다.엔진만으로도 489마력의 힘을 뿜어내지만, 전기모터가 더해져 최고출력은 653마력까지 높아졌다. 큰 덩치를 끌고 갈 최대토도 81.6㎏f·m로 넉넉하다. 0→100㎞/h 도달시간도 4.3초면 충분하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일반(마일드) 하이브리드보다 배터리 용량이 크다. 그만큼 전기모터의 개입이 잦고, 전기차처럼 모터로만 움직일 수도 있다. XM의 배터리 용량은 29.5㎾h, 환경부 인증 기준 62㎞까지 기름소비 없이 오로지 전기만으로 달릴 수 있다.
X5나 X7 같이 덩치가 큰 다른 BMW SUV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친환경성도 중요하겠지만 ‘더 강한 차’를 위한 조합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앞서 시승한 i4보다 덩치도 크고 차고도 높다. 아무래도 회전구간에선 몸놀림이 제한적이다. 그래도 코너를 공략하는 데 부담이 크진 않다. 코너링에서 뒷바퀴를 슬쩍 돌려주는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 48V 전기모터가 자세 제어에 개입하는 액티브 롤 스테빌라이제이션, 대용량 브레이크 등이 큰 덩치의 단점을 상쇄해줘서다.
무게가 2.7톤을 넘어가지만 가속구간에서 속도를 붙여나가는 실력은 경이로울 정도다. XM의 안전 최고속도는 250㎞/h, 일반적인 상황에서 접하기 어려운 속도지만 XM에겐 이 숫자마저 제약에 불과하다.
세 차 모두 성능이 차고 넘치지만, 잘 조율된 ‘소리’가 운전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작곡가 한스 짐머(Hans Zimmer)와 공동 개발한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 덕분이다. 마치 내연기관차처럼 가속페달을 조작하는 정도에 따라 소리로 피드백을 주고, 급 가속시엔 게임에서 들어본 것 같은 부스트 사운드가 활성화된다. XM의 경우 고성능 스포츠카처럼 ‘빠바방’ 울리는 팝핑 사운드까지 재현된 점이 흥미로웠다.
운전을 즐기기 위한 대가는 적지 않다. 전기 세단 i4는의 가격은 8110만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XM은 2억2330만원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