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선점 위한 신탁업 체계화 돌입
전문인력 확대 등 각종 과제도 즐비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국내 보험사가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 먹거리' 사업 중 하나인 신탁업 강화에 나섰다. 베이비붐 세대(1955년부터 1964년까지 출생자)의 은퇴가 가속화되면서 신탁 시장의 성장세가 빨라졌고 향후 신탁대상 재산과 위탁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자 보험사들도 시장 선점을 위한 체계화에 돌입했다.
이와 더불어 하반기부터는 보험금을 신탁 재산으로 관리해 주는 '생명보험금청구권'도 허용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관련 사업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탁 전문 인력을 갖춘 은행이나 증권사와 달리 보험사는 아직까지 설계사 조직에 의지해 신탁 영업을 확대하다 보니 전문성 측면에서 타 금융권에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교보생명은 최근 금융위원회로부터 재산신탁업 인가를 받았다. 지난 2007년 금전신탁업을 인가받았던 교보생명은 재산신탁까지 진출하며 종합재산신탁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삼성생명·한화생명을 포함해 미래에셋생명·흥국생명 등이 종합재산신탁업을 영위하고 있다.
종합재산신탁은 하나의 계약으로 금전, 부동산, 유가증권, 특수재산 등 여러 유형의 재산을 함께 수탁해 통합 관리 및 운영하는 서비스다. 유언대용·증여·장애인·후견신탁 등이 포함된다. 고객이 사망이나 치매 등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내 뜻대로 재산이 쓰이도록 미리 설계하고 상속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 노후 준비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보험사들은 하반기부터 시행될 '보험금청구권 신탁' 도입과 관련해 시장 진출을 위한 대응책 마련에 돌입했다. '보험금청구권 신탁'이 9월 말 도입되면 고객이 사망한 후 나오는 보험금을 보험사가 대신 수령해 보험계약자가 생전 지정한 자녀나 친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된다.
보험사는 재산신탁과 함께 보험금청구권 신탁으로 자산관리 시장에 진출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하반기 보험금청구권 신탁재산에 새롭게 진출하려고 준비 중이다"라며 "보험금청구권신탁을 확장해 신성장 분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 1300조 시장 잡기 위해 신탁업 강화
보험사가 연이어 신탁업에 진출하는 이유는 '미래 먹거리'로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22년 상속 및 증여 재산 규모는 188조4214억원에 달했다. 5년 전인 2017년 90조4496억원 대비 2.1배 증가했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상속과 증여 시장과 신탁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장은 점차 커지고 있지만 보험사는 그간 신탁업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지난 5월 기준 재산·자산·국내 신탁 시장 규모는 1340조9511억원에 달했지만 보험업권의 신탁 규모는 24조8991억원으로 전체 신탁 시장의 1.8%에 불과했다.
이에 보험사들은 종합재산신탁에 진출해 고객 관리 강점을 극대화하고 핵심 사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종합재산신탁은 생애주기에 맞는 상품을 만들고 고객의 재무목표 달성을 돕는다는 점에서 생명보험업과 매우 유사하다. 현재 일부 보험사는 △유언대용신탁 △증여 신탁 △장애인 신탁 △후견 신탁 등 신탁 상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하반기 관련 법률 개정에 맞춰 보험금청구권신탁이 도입되면 관련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임준 보험연구원 연구위원도 '생명보험회사의 고령화 대응 전략' 보고서를 통해 고령층과 관련된 후보 사업군으로 돌봄서비스 등과 더불어 신탁업을 꼽으면서 "생명보험회사가 단순히 생명보험상품만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장기적으로 고령층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고령층의 삶에 관한 사업자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사 관계자도 "보험사의 상품과 신탁 시장의 연계성을 최대한 고려하고 있다"며 "성장 가능성이 큰 만큼 전략을 통해 발전시킬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각에선 신탁 영업을 맡을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은행·증권업계도 해당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어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생명보험사 대다수가 개인 사업자 조직인 설계사 영업망을 주축으로 하고 있는 만큼 신탁 영업까지 공격적으로 확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대형사인 삼성생명, 한화생명 등이 2010년 전후로 신탁업 문을 두드렸지만 아직까지 유의미한 실적을 내지 못했다.
또 보험사·보험대리점에서 체결된 보험계약에 대한 신탁계약을 진행할 때 보험사가 아닌,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서도 가능한 만큼 1금융권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차별화도 보험사들에겐 숙제다.
보험사 관계자는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그간 신탁계약을 진행해 오면서 신탁업 시장에서 보험사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연계 상품이나 다양한 방안을 추후 내놓으면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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