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마켓에서 카드사 비중 89% 차지
장기적으로 신용판매 등 본업 수익 늘어야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가맹점 수수료 인하, 조달 비용 상승 등으로 인한 업황 악화에 시름 중인 카드사들이 데이터 사업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성장동력이자 미래 수익원으로 데이터 사업을 지정하고 최첨단 소비 데이터를 가공해 수익원으로 활용하면서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다만 업계에선 부가적인 사업도 중요하지만 카드사의 생존을 위해서는 적격비용 제도 개편, 수수료율 조정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신용판매 부문이 강화되어야 카드사의 장기적인 비전이 구체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2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금융데이터거래소 데이터 마켓에 등록된 서비스(일반 데이터·보고서·선택 구매형·구독형·임대형 상품·AI테스트베드)는 총 8370건으로 이 중 9개 카드사(신한·삼성·현대·KB·롯데·우리·하나·NH농협·BC카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89%(7455건)에 이른다.
신용카드 데이터 중 가장 비싼 상품은 신한카드의 그랜데이터가 판매하는 '통신·소비·신용 결합 데이터'다. 시작가는 1억원이다. 이어 삼성카드의 가명결합 데이터 역시 최소 1000만원의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삼성카드 회원의 통신사별 유동 인구 정보와 편의점 소비 내역 등을 결합한 상품이다.
NH농협카드의 '월별 시·도·업종별 카드 이용 현황'도 150만원이라는 가격에도 유료 인기 데이터 상품으로 자리 잡았고 BC카드의 '이마트24 편의점 X BC카드 고객 결합 생활 소비 빅데이터' 역시 50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무료 상품 중에선 신한카드의 '코로나19에 따른 카드 소비 동향(결제건수)'나 삼성카드의 '온라인 쇼핑 요일·시간대별 이용 특징' 등이 이름을 올렸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그간 최첨단 소비 데이터를 구축했던 카드사가 본격적으로 데이터 판매를 시작하면서 인기 공급 기업 상위 10개사 중 6개사가 카드사다"라며 "데이터 시장은 이미 카드사가 장악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데이터 판매는 자연스럽게 카드사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신용카드사 8곳(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비씨카드)의 기타 영업수익은 1조2480억원이다. 지난 2021년 동기(7192억원)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기타 영업이란 신용카드와 리스, 대출, 할부금융 등을 제외한 사업으로 주로 플랫폼과 데이터 사업이다.
특히 BC카드의 경우 2분기까지 총 2373억원의 수익을 기록하면서 올 상반기 기타 영업수익이 가장 높은 카드사가 됐다. 국내 금융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데이터 관련 인허가를 모두 받은 BC카드는 그간 쌓았던 데이터 분석과 결합 역량을 민간과 공공영역에서 데이터 공급으로 지속하겠단 방침이다.
◇ 카드사 연이어 데이터 역량 강화
데이터 관련 사업이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하자 카드사들은 데이터 역량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앞서 데이터 콘텐츠와 상품을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 'BLUE Data Lab'을 오픈한 삼성카드는 빅데이터 기반 통계 지수와 데이터 분석 리포트 등 공개 자료 외에도 유료 이용 고객을 위한 '데이터 상품'도 제공한다.
지난 4월 빅데이터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던 신한카드는 지난 2021년 출범한 '그랜데이터(GranData)' 사업으로 지난해 140억원의 수익을 벌었다. 유통·가전·생활 데이터 추가를 진행했던 신한카드는 관련 업종 데이터 기관과 결합 상품도 개발할 예정이다.
BC카드는 신금융연구소를 운영하며 일반 대중에게도 데이터 콘텐츠를 공개하고 있으며 회원사들에게 데이터 기반 트렌드 리포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KB국민카드는 2021년 론칭한 온라인 기반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데이터 루트'를 통해 공공과 민간기업에 데이터를 판매하고 있다. 데이터사업부를 별도로 두고 있으며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존 신용평가 서비스와 차별화된 맞춤형 신용평가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사업자 신용평가(CB) 사업도 데이터 기반 수익 사업 중 하나다.
현대카드는 네이버·대한항공·스타벅스·이마트·코스트코와 제휴한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를 통해 데이터 사이언스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롯데카드도 지난해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빅데이터·AI연구원과 빅데이터 분석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전문가들도 과감한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기반 다양한 금융서비스 창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진단했다. 류창원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카드업계는 카드사가 강점을 가진 다양한 데이터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면서 "특히 카드사들이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종합금융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역차별 해소 등 정부의 균형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적격비용 재산정 등 통해 신용판매 수익 늘어야
카드사들이 연이어 데이터 사업에 집중하면서 미래 먹거리 개발에 열중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규제 완화, 수수료율 조정이 카드사 실적 개선에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카드사의 본업인 신용판매 수익성 제고를 위해 적격비용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앞서 카드업계는 지난 2012년 시행된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를 통해 가맹점 수수료율을 줄곧 인하해 왔다. 다만 시행 기간 수수료율이 한 번도 인상되지 않고 우대 수수료율 적용 대상인 영세·중소 가맹점 비중이 96%에 달하면서 해당 제도를 개편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여신금융협회 세미나에서 서지용 상명대학교 교수는 "카드사 적격비용 제도 개편을 통해 신용판매 부문의 수익성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현재 획일적으로 3년마다 적격비용을 산정하는 것에서 벗어나 금융시장 급변 시 수수료율 재조정 시기를 유연화하자고 강조했다.
카드사의 수익 다각화를 위한 실질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논의됐던 종합지급결제업(종지업) 도입을 들 수 있다. 종지업이란 은행이 아닌 전자금융사업자가 지급결제 계좌를 개설, 예금과 대출을 제외한 카드대금 결제나 보험료 납입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제도다.
카드사 관계자는 "다른 부분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본업이 어렵다 보니 수익성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라며 "수수료율 조정이 내년으로 미뤄졌는데 이런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카드사의 미래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