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이은 압박에 대한 부담 표출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가 2026년까지 28조원 규모의 자구노력을 하겠다는 내용의 경영혁신안을 내놓은 것과 관련해 각 기관 내부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 경영혁신안의 일부 항목에 대해 각 노조가 협조를 거부하는가 하면, 일각에서 윤석열 정권의 입맛에 맞춘 '립서비스'로 내놓은 무리한 계획이라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12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한전과 가스공사 내부에서 이번 경영혁신안이 달성하기 어려운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며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급 관계자는 “전체 직원이 10년 간 무급으로 일해도 (경영혁신안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국민의힘)이 요구하니까 맞춘 것에 불과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한전과 가스공사가 2026년까지 각각 14조원을 줄이겠다는 이번 경영혁신안을 각 기관이 자발적으로 작성해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외압에 의한 것’이라는 의문도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노조가 반발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특히 임직원 복리후생을 축소하는 부문에서 노조와의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전은 '노조는 혁신계획 이행에 부정적'이라고 보고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개최된 '2023년 산업부 소관 공공기관 혁신계획' 회의 자료에 따르면 가스공사가 개선키로 한 복리후생 개선(축소) 계획에서 올 1분기까지 이행 실적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스공사는 올해까지 임직원 고교생 자녀 학자금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으나, 정작 1분기에 직원들과 제대로 된 협의조차 못했다. 이에 따라 가스공사 측은 올해 달성키로 한 복리후생 개선 계획을 하반기에 이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전도 마찬가지다. 한전은 올해까지 ▲사내대출(주택자금, 생활안정자금) 한도 하향 ▲해외지사(영어권 국가) 자녀 학자금 기준 개선 ▲창립기념일 무급휴일 전환에 관해 개선할 예정으로 4개 항목에 대해 노사합의를 추진하고 있지만, 1분기까지 개선 완료된 것은 해외지사(영어권국가) 자녀 학자금 하나뿐이다.
이같은 두 기관의 혁신계획 이행 실적 부진은 △학자금, 활동보조비, 체력단련비를 미지급하기로 규정 개정을 완료한 한국에너지공단 △학자금을 공무원 수당 규정에 준해 지급하고 생활안정자금 대출금리 요율 기준을 신설하도록 지침을 개정한 한국가스기술공사 △경조사비와 학자금 규정을 삭제한 남동발전 △경조사비 미지급, 주택구입과 생활안정자금 사내대출 상한을 낮춘 동서발전 등과 대조를 이룬다.
한수원의 경우 1분기 이행 실적이 없지만, 주택구입과 생활안정자금 사내대출 한도 하향을 올해 6월 완료하겠다고 이행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힌 상태다.
한전과 가스공사가 2026년까지 28조 원에 달하는 자구노력을 벌이겠다는 내용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 6일 개최된 전기·가스요금 민당정 간담회에서다. 간담회를 주도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국민들에게 에너지 절약 동참을 호소하며 "한전과 가스공사가 2026년까지 28조원의 자구노력을 강도 높게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경영혁신 이행 실적이 부진하자 산업부는 지난 11일 한전과 가스공사 두 기관의 사장만 참석한 에너지공기업 경영혁신 점검회의를 개최하면서 경영혁신 목표 달성을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독려하기도 했다. 당시 산업부 보도자료에는 ‘한전과 가스공사가 뼈 깎는 자구대책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자구노력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라는 점을 엿볼 수 있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기본적으로 “자구노력은 필요하다”며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내부 종사자들은 경영혁신 규모·강도·시기 측면에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전기·가스요금의 또 한번의 인상을 앞두고 당정과 관계자인 한전·가스공사가 어떻게 사안을 해결해 나갈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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