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믹스 원전 비중 15~32% 적정...자원 빈국 한국, 적정 수준의 원자력 필요”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한국수력원자력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최재석 명예교수는 복원력(resilience) 측면에서 재생에너지를 가장 적합한 에너지로, 마이크로그리드를 적합한 전력계통으로 꼽았다.
8일 기자와 만난 최 교수는 지난해 경상국립대를 정년퇴임했지만 30년 넘게 미래형 양수발전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현역’으로 한국에 마이크로그리드와 다양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보급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1989년 은사인 송길영 교수와 함께 양수발전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지금도 공책에 수식을 써가며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양수발전 신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송 교수는 한국의 전력계통의 아버지로 불린다.
1989년 당시 논문에 대해 최 교수는 “그때 논문은 소비되지 못하고 남아도는 원전 전기를 저장하기 위한 가역형 양수발전 기술을 연구한 것”이라며 “최근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가변속 양수발전과 터너리(Ternary)와 콰티너리(Quaternary) 양수발전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확대에 발맞춰 선진국들은 양수발전 기술을 개량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는 2008년 재생에너지 맞춤형 양수발전에 관한 TFT 특별세미나에서 양수와 양발의 스위칭 시간을 1분 이내로 소화하는 터너리 양수발전기술 개발을 소개했다. 현재 미국은 4세대 콰티너리 양수발전 기술(2조 원/GW)을 개발해 250MW 설비를 건설 중이다.
가변속 양수발전은 핵심기술인 전력전자기술과 자동제어기술분야에서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일본이 35년 전부터 개발해온 기술이다. 일본은 한국에 이 기술을 수출하려고 노력 중이다.
가변속 양수발전은 양수할 때 작동하는 전력의 범위가 가역형보다 넓어서 재생에너지의 잉여전력을 빨아들이는 운행의 폭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터너리와 콰티너리 양수발전은 비록 건설비가 비싸고 발전소 사이즈가 크지만 가변성을 지니면서도 양수양발(충방전) 스위칭 시간을 배터리와 비숫한 수준인 1분 이내로 확보할 수 있다.
최 교수는 “한국은 1970년대부터 가역형(1세대, 1조 원/GW) 양수발전을 7곳 설치했는데, 현재는 재생에너지가 확대되자 가변속(2세대, 1.2조 원/GW)과 터너리(3세대, 1.7조 원/GW)등의 양수발전을 필요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앞으로 ESS 관련 기술에 앞선 국가가 전 세계 전력산업을 주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재 확보된 10조 원에 가까운 예산으로 미래형 양수발전 기술의 국산화를 확보하고 한국 실정에 맞게 예산을 서서히 높여 나가길 희망했다.
최 교수는 복원력(resilience) 측면에서 재생에너지와 양수발전이 보다 가치있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는 유일하게 복원력을 갖춘 에너지원이다. 복원력이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회가 정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능력, 일종의 회복력을 의미한다.
인류의 생존과 지속성을 고민하는 복원력 관점에서 보면 원전은 방사능 오염의 위험이 있는 사용후 핵연료 폐기물을 배출하고 연료인 우랴늄의 경우 생산지가 한정됐기 때문에 복원력이 취약하다.
재생에너지는 확보에 한계가 있고 생산 전력이 간헐적이고 불규칙한 단점이 있지만, 자연 재해로 인해 발전소가 무너져도 다시 세우면 된다. 이러한 점은 기후변화로 인해 각종 재해가 빈번히 발생할 미래에서 큰 강점이다.
최 교수는 "지금의 핵분열원전이 방사능이 없고 핵폐기물이 없다면 오히려 가장 좋은 에너지원"이라며 "재생에너지는 발전이 불규칙하지만 무탄소, 무연료비, 무방사능이기 때문에 복원력이 큰 에너지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1000만년에서 1억년의 한 번 꼴로 오는 재앙에도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며 “이 관점에서 10만년에 한번 꼴로 사고가 터진다는 현재의 핵분열형 원전은 서서히 인류에서 배제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재생에너지보다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는 에너지원이 개발된다면 그것이 미래의 주류가 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이렇게 재생에너지의 가치가 크지만 자원이 한정돼 있고, 국제정치 구도와 역학 관계 때문에 한국이 당분간은 원자력 산업을 유지하며 재생에너지 맞춤형 양수발전 기술을 개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최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한국 원전의 적정 설비용량 비중은 15~32% 수준이다. 원전의 적정 발전량 비중은 그보다 높다.
원전의 설비용량 비중이 15% 아래로 내려가면 높은 전기요금 때문에 고통을 받고, 32% 이상 높아지면 전력계통 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커버하려면 기타 요소비용이 더 들어간다.
그는 "한국은 부존자원이 전혀 없고 국가에너지안보와 국제정치의 역학에 영향을 받아 원전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면서 "현재 원전을 운영하는 나라가 우랴늄을 어디서 수입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고 제안했다.
최 교수는 "대한민국은 지난 전력공학 선배들이 설정한 에너지 다양화 정책을 기조로 지혜롭게 에너지믹스를 설정해 왔다"며 “여러 이유로 한국의 재생에너지가 현재 고통 받고 있지만, 미래 가치가 있는 만큼 진면목을 다시 한번 인정받을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재생에너지의 단점과 결점을 보완하는 기술을 적극 준비하는 오히려 좋은 시간"이라며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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