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규제 강화와 함께 의료계의 자정노력 필요”
의료계 “상품구조가 적자 원인...악용한 브로커가 문제”

실손보험/제공=연합뉴스
실손보험/제공=연합뉴스

[데일리한국 박재찬 기자] 실손의료보험의 지난해 적자규모가 3조원에 육박했다.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적자 원인을 성형시술·도수치료·백내장 수술 등 과잉진료 여파로 파악하고, 다음달 ‘보험사기 예방 모범 규준’을 개정해 보험금 누수 방지를 위해 보험사기 의심 건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보험업계는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 뿐만 아니라 의료계의 자정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는 실손보험의 상품구조가 적자의 원인이라며, 이를 악용하는 보험업계 관계자인 ‘브로커’가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3일 국세청에 따르면 한 성형외과는 브로커 조직과 공모해 쌍꺼풀 수술, 코 성형, 지방흡입술 같은 수백만원의 미용수술을 해주고 이를 치료목적의 수술로 변칙처리해 환자가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 있게 해줬다. 이 과정에서 성형외과는 약 200억원에 달하는 성형수술 매출을 면세 대상인 치료 수술로 신고해 부가가치세 수십억원을 내지 않았다.

이같은 성형시술·도수치료·백내장 수술 등 과잉진료 여파로 지난해 실손보험의 보험손익 적자는 2조8600억원으로 전년보다 적자폭이 3600억원 증가했다.

실손보험은 보험자 가입자가 병원 치료 시 부담한 의료비의 일정액을 보장하는 보험상품이고, 보험손익은 보험료 수익에서 발생 손해액과 실제 사업비를 뺀 액수다. 지난해 실손보험료를 15%가량 올렸음에도 오히려 경과손해율은 113.1%로 전년보다 1.3% 포인트 높아졌다.

경과손해율은 발생 손해액(보험금 지급액 등)을 경과보험료로 나눈 비율로, 손해보험업계에서 손해율은 일반적으로 경과손해율을 의미한다.

실손보험의 대규모 적자에 대해 금감원은 “기존 1~3세대 상품을 중심으로 자기부담비율이 낮은 과거 실손보험 판매 상품의 과잉 의료 이용에 대한 효율적인 견제장치가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손의료보험 손익/제공=금융감독원
실손의료보험 손익/제공=금융감독원

실손보험 적자가 커진 것은 가격이 비싼 비급여 보험금이 많기 때문이다. 2020년 비급여 진료 항목의 금액 비중을 보면 도수치료가 12.8%로 가장 높았고, 조절성 인공수정체 8.7%, 체외충격파 치료 4.8%,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근골격계 4.4% 등의 순이었다.

의원급에서는 비급여 항목 중 백내장 수술을 위한 조절성 인공수정체 관련 진료가 전년 대비 10.8%포인트 늘어 가장 컸고, 자궁근종 고강도 초음파 장비를 동원한 ‘하이푸’ 시술, 코막힘 증상 해결을 위한 ‘비밸브 재건술’ 등도 늘어 과잉의료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 지난해 12월 말 기준 실손보험 보유 계약은 3550만건으로 전년 대비 54만건 증가했다. 실손보험료 수익은 신규 가입 및 보험료 인상 등으로 11조6000억원을 기록해 1조1000억원 늘었다.

실손보험료 증가에도 보험손익 적자가 커지면서 금융당국은 ‘보험사기 예방 모범 규준’을 개정하고 다음달 시행할 계획이다. 이번 개정은 보험금 누수 방지를 위해 보험사기 의심 건에 대한 심사 강화가 핵심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1월부터 보험업계와 함께 실손보험 보험금 누수 요인을 점검하고 개선을 추진해 왔다. 이번에 개정된 사항에 따르면 보험금 누수 방지를 위해 보험사기 의심 건에 대한 심사가 강화된다.

또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정당한 보험금 청구의 경우 지연 지급 시 지연이자를 포함해 지급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보험금을 삭감하거나 지급하지 않을 경우 사유 및 피해 구제 절차 안내도 의무화했다.

하지만 보험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의 보험사에 대한 규제강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규제만으로는 실손보험금 누수를 해결하기는 힘든 상황이다”라며 “실손보험 정상화를 위해 의료업계의 자정노력이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실손보험 적자의 근본적인 원인은 잘못된 상품설계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적자는 실손보험의 구조상 허점을 노린 보험업 종사자 ‘브로커’에서 시작됐다”며 “보험업계가 이를 과잉진료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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