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 보험 청구 전산화'만 국회 통과
'보험사기특별법' 등 시급한 법안도 다수
자동 폐기 앞두고 있어 책임은 22대 국회로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사진=연합뉴스.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 사진=연합뉴스.

[데일리한국 최동수 기자] 올해 발의된 보험업법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1건뿐이었다. 전속설계사 교차모집제도 완화, 보험협회 업무 범위 확대 등 업계에서 비중이 큰 법안 15건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의 미처리 개정안은 제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면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대부분의 보험 관련 민생 법안이 여야의 잇따른 정쟁으로 인해 통과되지 못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안 처리를 위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벼락치기식 통과를 기대했지만 결국 내년 총선 이후 22대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게 됐다.

28일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은 총 16건이다. 이중 정무위원장 대안으로 발의된 실손 청구 간소화 관련 법안 1건만 지난 10월6일 본회의에서 의결돼 같은 달 24일 공포됐고 나머지 15건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인 상태다.

의료계의 반대로 14년간 국회에 계류 중이었던 실손 청구 간소화 법안은 보험업계의 숙원으로 여겨졌던 사안이다. 소비자의 요청 시 요양기관이 실손의료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에 전자적으로 전송하게 되며 보험사는 이를 위한 시스템 구축 및 운영 의무를 부담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즉 내년부터는 실손보험 청구 시 환자가 직접 서류를 뗄 필요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서류 작업 등의 비용을 줄이고 비급여 진료비 등의 데이터화로 과잉 진료를 예방할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0년 넘게 요구했던 실손 청구 간소화가 드디어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 계류 중인 법안이 많다"며 "대부분이 민생 법안이지만 내년에 있을 총선으로 인해 뒷전으로 밀린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 보험사기방지특별법 등 계류 중인 법안만 15개

실손 청구 간소화 법안을 제외한 15개 개정안은 현재 모두 국회 계류 중이다. 우선 정부가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전속설계사 교차모집제도 완화' '기초서류 준수의무 위반 시 과징금 부과 기준 개선' '과태료 조항 정비' 등이 있다.

특히 정부안엔 보험 관련 단순 민원의 상담 및 처리와 보험사 간의 분쟁의 자율 조정을 보험협회 업무 범위에 추가하는 '보험협회의 업무 범위 확대' 관련 보험업법 개정안도 포함됐다. 보험협회가 단순 민원을 처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융 민원을 담당하고 있는 금융감독원의 제한된 인력만으로는 신속한 민원 서비스 제공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일어왔다.

보험업계에서 실손 청구 간소화 법안을 제외하고 가장 통과를 바라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 역시 아직까지 국회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다. 올 상반기 적발 금액 6000억원·적발 인원 5만명을 넘어가면서 보험사기 관련 법 개정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해당 개정안들은 보험설계사와 의료기관, 정비업체 관계자 등이 보험사기를 저지를 경우 이를 가중처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영화 보험연구원 보험법연구실장은 "보험사기죄의 경우 보험사의 손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량한 다수 보험계약자 집단 전체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고 사회안전망으로서 기능해야 하는 보험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범죄다"라며 "이 같은 특성을 고려해 기본적으로 엄히 처벌할 필요성이 있으며 이것이 바로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의 입법 취지다"라고 개정안 통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보험사나 보험설계사 등에 관한 제재의 합리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들도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은 기초서류 준수 의무를 위반할 경우 부과 기준을 '연간 수입보험료의 50% 이하'에서 '보험소비자에게 발생한 피해 금액'으로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모든 기초서류 준수 의무에 대해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자는 취지다

그 밖에도 손해사정제도 개선, 특별이익 규제 완화, 보험금 감액 또는 지급 거절 시 설명 의무와 의료자문 설명 의무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이 계류 중이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2+2 합의체 회의. 사진=연합뉴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여야 2+2 합의체 회의. 사진=연합뉴스.

◇ 보험업법 등 올해 안에 민생법안 처리 어려워

업계에선 이러한 국회의 방관이 보험 소비자 피해로 직결된다고 비판한다. 특히 2020년 5월 임기가 시작된 제21대 국회에서 약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보험 사기 관련 특별법을 포함해 총 59건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계류되면서 보험 관련 피해 역시 급격히 늘었다.

보험계리사 제도 등 행정 관련 법안 역시 국회로 인해 적용되지 않으면서 보험 산업 전체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최근 늘어난 보험계리사 수요에 비해 그 수가 적어 구인이 어려워진 만큼 법안 통과로 인한 보험계리사 인식 제고 및 유입 증가를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보험업법 등의 민생법안보단 특검법 등의 정쟁 법안 논의에 더 적극적이기 때문에 올해 안에 법안 처리가 이뤄지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더불어 제21대 국회 임기도 얼마 남지 않으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다수의 보험업법 개정안의 자동 폐기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내년에는 총선이 있는 만큼 연내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은 2024년 5월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다만 여야가 가까스로 내년도 예산안과 민생 법안을 처리하기 위한 임시국회를 열기로 합의하면서 보험업법 개정안은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본 회의가 추가로 예정되어 있지만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안 등 다른 법안 처리가 우선일 가능성이 높아 개정안 처리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추후 법안들이 폐기되면 언제 다시 법안이 상정될지 모르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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