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한국 주현태 기자] 항공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은행 주도로 추진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간 통합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래항공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항공빅딜이 외국의 경쟁당국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통합항공사의 경영환경 불확실성은 물론, 항공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이 해외 경쟁당국과의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며 국내 항공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 및 국적항공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공정위가 해외당국과 합의를 긍정적인 길로 이끌어줘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해외 당국심사 정부가 지원해야”
이윤철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합병의 최대 고비는 필수 경쟁당국에 달려있다. 하지만 해외 경쟁당국과의 합의를 어렵게 만든 것이 공정위”라며 “보통 경쟁당국들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경우처럼 국가기간산업이 합병할 수도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있지 않다면 승인을 해줄 것인데, 공정위의 '조건부 합의'라는 점이 큰 문제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이어 “타국의 합의를 원활하게 해주기 위해 자국산업의 보호차원에서 유리한 조건을 내주고 해외당국과 합의를 긍정적인 길로 이끌어줘야 하는데, 우리나라 공정위는 대한항공의 발을 묶어두고 합의 기준을 어렵게 만들어 놨다”며 “대한항공은 공정위가 어렵게 만들어 놓은 기준에서 다시금 해외당국과 합의를 해야 하는데, 이는 굉장히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1월부터 기업결합을 추진했지만, 공정위가 엄격하게 독과점을 심사하면서 1년1개월 만인 올해 2월에서야 결과를 받아들었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했다. 양 사가 보유한 국내외 노선 중 중복노선에 대해 슬롯과 운수권 일부를 반납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공정위 측은 국제선의 경우 양사 중복노선 총 65개 중 미주와 유럽, 중국 등 26개 노선, 국내선은 중복노선 총 22개 중 14개 노선에서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이밖에도 △운임인상 제한 △공급축소 금지 △좌석간격·무료수하물 등 서비스품질 유지 △항공마일리지 불리하게 변경 금지 등도 포함됐다.
대한항공은 현재 필수 신고 국가인 미국, EU, 일본, 중국 등 4개국과 임의신고 국가인 영국, 호주로부터 기업 결합 심사를 받고 있다. 필수 신고 국가 중 한 국가라도 기업 결합을 반대하면 인수는 무산된다.
이에 정부가 양사 합병을 승인한 만큼 이를 원활히 마무리할 수 있는 정책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해외 경쟁당국이 자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 위축과 독과점 등을 문제 삼으면 심사는 길어질 수밖에 없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합병을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해당 국가가 필수 신고국일 경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은 무산된다. 실제로 올해 초 EU 집행위원회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승인해 무산시킨 바 있다.
최근 EU는 국내 LCC업계인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로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 관련 의견을 청취했다. EU는 대한항공이 국내 LCC가 유럽 노선에 취항하면 독점이 완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내용을 질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는 대형 항공기를 보유 중으로 중장거리 노선을 취항했거나 계획 중에 있다.
일각에선 이번 EU의 시도가 긍정적인 신호라는 목소리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EU가 국내 LCC들의 의견을 물어 합병항공사가 독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이는 곧 긍정적인 시그널과 연결된다”고 예상했다.
중국도 변수로 떠오른다. 앞서 우리나라는 지난 23일 미국 주도로 결성된 IPEF 참여를 선언했다. IPEF는 미국 주도로 결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협력단체다. 현재 IPEF는 한국을 포함,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3개국이 참여를 선언했다. 다만 IPEF는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지역 경제 틀이면서도, 중국이 결성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을 견제하는 성격이 짙어 민감한 문제일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달 27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외교 정책 변화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한국이 중간 지점에서 양국 관계를 발전시킬 것으로 믿는다”고 밝히면서 여지를 담겨 놓았다.
황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두 항공사 합병에 불똥이 튈 수도 있다”라며 “국내 미래 항공산업의 운명이 달려있는 만큼, 윤 정부의 입장에선 외교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주요한 현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아시아나항공 ‘독자 생존’ 가능할까?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분기 별도기준 매출 1조1466억원, 영업이익 1769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1분기 기준으로는 역대 분기 최대 실적을 달성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이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코로나 방역 규제가 풀리며 여객 수요가 회복되면, 아시아나의 실적 개선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23일 화물기로 개조됐던 여객기 ‘A350’에 다시 좌석을 부착하고 본격적인 국제여객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달 중 프랑크푸르트, 런던 노선 증편을 시작으로 파리·로마 등 유럽 노선을 본격적으로 정상화할 방침이다. 오는 7월에는 아시아나항공의 유럽 노선 국제여객 운항률은 50%를 회복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나항공의 '독자 생존'은 힘들다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판단이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역대급'을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은 올 1분기 기준 2217%. 지난 2020년 1343%에서 2021년 2282%로 상승한 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결산 기준으로, 아시아나항공의 부채 비율은 코스피 주요 상장사 가운데서 가장 높았다.
황 교수는 “최근 아시아나항공이 화물호조로 긍정적인 실적을 기록했지만, 부채로 놓고 보면 정상적인 재무실적으로 볼 수 없다”며 “환율 상승에 따른 손실과 법인세 미납금에 대한 충당금이 설정되면서 재무건전성이 더욱 악화됐는데, 단기간에 이를 개선하기는 어렵고, 코로나19와 같은 펜데믹 현상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다”라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또한 “대한항공와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무산되는 순간부터,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는 산업은행이 떠안아야 하고, 이는 곧 국민의 세금으로 메꿔야한다”며 “이는 곧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파생될 것이다. 이번 합병의 당초 취지가 아시아나의 시장 내 생존, 국가 항공업 경쟁력 유지 등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윤철 교수도 “아시아나항공은 정부의 지원으로 위기속에서 의미있는 경영실적을 달성하고 있지만, 재무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운영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인수가 무산될 경우 최대 피해자는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에어부산 등은 인수합병의 계열사라는 이유로 신규 노선 배분에서 배제되는 등 불이익을 받고 있다. 실제로 경쟁 LCC가 공격적으로 항공기 도입에 나선 것과 반대로 ‘합병 대상’인 에어부산은 항공기 수도 줄어들고 있다.
◇ “양대항공사 합병, 국내 항공산업의 발전 이바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추진은 항공업 구조 재편 등을 통한 국내 항공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 및 국적항공사의 경영 정상화가 목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020년 11월 아시아나항공을 대한항공과 합병시키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당시 항공업계 안팎에선 코로나19로 가시밭길을 걷는 아시아나항공은 국민 세금으로 지원을 받아 운영됐고, 대규모 구조조정도 예상됐다.
대한항공도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의 구조조정과 국가 항공산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장기화된 코로나19 위기 속 불확실한 경영환경을 타개하고 원활한 아시아나항공 인수·통합을 통해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은 글로벌 시장에서 얻게 되는 시너지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산업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새로운 창출 사업이 제한적이다. 이에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 허브공항, 기재 등 시너지를 통해 국가기간 산업으로서의 장기 성장과 함께 항공업계 고용 안정에도 일조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본격적인 인수에 나섰다.
이윤철 교수는 “항공산업은 민간기업이 운영하고 있지만 국가의 외교적인 부분에서 크게 작용하는 국가기간산업이다. 네트워크를 중시하기 때문에, 각국에서도 항공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양 항공사의 합병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국가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규모의 경제 결합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이어 “그동안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독점·소비자편익이라는 이유로 분산돼 운영됐다. 이는 저비용항공사를 통해 메꿀 수 있는 부분을 국가적으로 자원낭비를 시킨 것”이라며 “유럽,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대형 항공사가 하나씩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산업정책상 단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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