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투자 이어지며 자금조달 능력에 이목
현지 인력 부족으로 비용 부담도 증가
[데일리한국 김정우 기자] 국내 배터리 업계가 미국 시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금 조달과 현지 인력난에 따른 비용 문제가 과제로 손꼽히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지난해 3분기까지 나란히 조 단위 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LG에너지솔루션 4조1358억원, SK온 2조3009억원, 삼성SDI 1조6521억원 등이다. 전기차 시장 성장 등에 따라 글로벌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점유율을 늘리기 위함이다. 자동차 격전지인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공장 설립 등에 투자가 주로 이뤄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1·2공장에 이어 3공장 투자 계획까지 세웠으며 스텔란티스, 혼다와의 합작법인을 통한 북미 현지 공장 설립까지 나선다. 독자 생산라인도 미국 미시간주에 이어 애리조나주에 추가한다. 이를 통해 지난해 200GWh(기가와트시) 수준이었던 연간 글로벌 생산능력을 2025년 540GWh까지 늘릴 계획이다.
SK온은 미 조지아주에 현재 9.8GWh 규모 생산능력을 갖춘 1공장을 운영 중이며 올해 11.7GWh 규모의 2공장 가동을 계획 중이다. 현대자동차, 포드, 스텔란티스와의 합작공장 설립 계획까지 더해 현재 70GWh 규모인 연간 총 생산능력을 291GWh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손잡고 첫 미국 공장 설립에 나선다. 지난해 12월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을 통한 미 인디애나주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 설립 계획이 현지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약 4조원이 투입되는 이 공장은 2025년 23GWh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업계에선 다른 완성차 업체와 삼성SDI의 추가 합작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최근 수년간 급성장한 글로벌 전기차 수요를 잡기 위해 이 같은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공장 한 곳을 짓는데 수 조원의 비용이 필요한 만큼 배터리 기업들의 투자자금 조달 능력에 관심이 쏠린다. 흑자를 내기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은 배터리 기업들에게 조 단위 투자금은 상당한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2위, 국내 1위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영업이익이 9763억원으로 연간 영업이익 총액으로도 공장 한 곳 설립 비용을 충당하기 어렵다. 완성차 업체와의 합작 공장 설립이 활발한 이유 중 하나도 자금 조달이 용이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지난해 1월 성공적인 기업공개(IPO)를 통해 10조2000억원에 달하는 자금 조달에 성공해 상대적으로 여유를 챙길 수 있었다. 자국 내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미국의 정책적 금융지원도 이뤄졌다. 미 에너지부는 지난해 12월 얼티엄셀즈의 '오하이오·테네시·미시간' 공장 건설을 위한 25억달러(약 3조2000억원) 규모 대출을 최종 승인한 바 있다.
SK온은 막대한 설비투자에 따라 지난해 3분기까지 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만큼 외부 자금 조달이 절실하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사업부를 떼어내 세워진 SK온은 물적분할에 대한 주주 반발에 따라 IPO 계획을 2026년으로 미뤄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차질이 생겼다.
SK온의 구원투수로는 SK이노베이션이 나섰다. 지난해 12월 결의한 2조8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SK이노베이션이 2조원,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 등 재무적 투자자가 8000억원을 각각 출자하기로 한 것이다. SK온은 또 LG에너지솔루션이 승인 받은 미국의 첨단기술 차량제조 프로그램 정책자금 신청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스텔란티스와 미국 합작공장 투자금을 분담하며 재무적으로도 자체 투자 여력이 상당히 남아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1분기 분기 매출 4조원 돌파에 이어 2분기 4290억원의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3분기에 다시 매출 5조3680억원, 영업이익 5659억원으로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윤혁진 SK증권 연구원은 “삼성SDI의 최근 3년간 설비투자와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유사한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며 “그만큼 재무 여력이 존재하며, 추가적으로 SDC지분(장부가 4조8000억원)까지 고려하면 가장 투자여력이 많은 기업”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미국에 생산거점을 세우면서 현지 인력이 부족해진 점도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 정부가 자국 내 공장에 대규모 지원책을 제시해왔고 지난해 시행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현지 보조금 요건을 맞추기 위해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현지 공장 투자에 나선 점이 주효한 것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 자동차연구센터(CAR)가 집계한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미국 내 자동차 산업 신규 투자 예정액은 330억5000만달러(약 42조원)로 2017년 대비 4배 이상 불어났으며 이 중 배터리 공장 투자액은 223억4000만달러(약 28조원)에 달했다.
이에 따라 미 현지에서는 높은 임금을 제시해도 공장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며 비용 부담을 키우고 있다. 얼티엄셀즈의 경우 노동조합이 임금 단체협약에서 기존의 두 배 수준인 32달러의 시간당 임금을 요구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미국 현지에 인력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라 한국 업체의 합작법인에 노조 설립 가능성이 높다”며 “중장기적으로 공장 자동화를 높여 영업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SK온, 유상증자로 2.8조 조달…SK이노·한투PE 참여
- LG엔솔, 2026년까지 오창산업단지에 4조원 투자
- LG엔솔·GM 합작사 ‘얼티엄셀즈’, 美 국채금리로 25억달러 투자금 확보
- 현대차그룹·SK온, 美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 SK온·포드, 美 블루오벌SK 공장 기공식 개최
- 삼성SDI, 3분기 매출 5조·영업익 5000억 첫 돌파…사상 최대
- 中공세에 주저앉은 K-배터리...LG엔솔, 글로벌 3위로 밀려나
- [CES 2023] SK온, ‘18분 급속충전’ 배터리로 이목 집중
- 니켈값 급등에 K-배터리 가격경쟁력 ‘흔들’
- SK온, 튀르키예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 무산 위기
- LG엔솔, SK온 대신 '포드 튀르키예 배터리공장' 파트너로 급부상
- 포드, SK온 대신 LG엔솔과 '튀르키예 합작설' 나오는 배경은...
- 내림세로 돌아선 니켈값에 'LG엔솔·삼성SDI·SK온' 안도
- LG엔솔, 혼다와 美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44억달러 투입
- SK온, KAIST와 배터리 인재 키운다
- LG엔솔, 국내외 '배터리 동맹' 보폭 넓힌다
- LG엔솔·SK온·삼성SDI, 美-中 사이서 기회 잡을까
- 韓 배터리업계, '해외 합작투자' 숨고르기 시작되나
- 삼성SDI, 연매출 20조 최초 돌파…영업이익도 사상 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