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발전단가 진솔한 계산으로 여야 대화 물꼬 터야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여권이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하는 처분장(방폐장)의 특별법 통과를 애타게 외치고 있다. 21일 국민의힘 소속 이인선·김영식 의원이 또다시 방폐장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개최했다.
이인선·김영식 의원은 민주당의 김성환 의원과 함께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인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안을 각각 발의한 의원들이다.
이인선·김영식 의원안과 김성환 의원안의 가장 큰 차이는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절의 저장용량을 산정할 때 기준이다. 여당의원들은 저장용량 산정 기준을 원전 운영기간동안 발생하는 폐기물 양을 근거로 삼았고, 김성환 의원은 원전의 설계수명기간동안 발생할 양을 기준으로 삼았다.
요컨데 여당의원은 원전의 계속운전을 염두에 두고 저장량을 산정하자는 입장이고, 김성환 의원은 원전의 설계수명만큼만 저장량을 산정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접점을 찾지 못했는데 이인선 의원은 김성환 의원안의 문구, 즉 '원전의 설계수명만큼의 저장량'을 넣고 대신 ‘기술위원회를 설치해 추후 기술발전 사항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문구를 추가하자고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6월 임시국회에서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은 논의되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따라 이인선·김영식 의원이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여권이 원전의 계속운전을 내세우는 이유는 원전의 전력구매단가가 가장 싸기 때문이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한전이 올 1~5월 태양광발전업체에서 전기를 사들이는 평균구매단가는 kWh당 171원이고, 원전은 42원이다.
원전의 구매단가가 가장 싸다는 사실은 원전이 수명이 다하더라도 수명연장을 통해 계속운전을 할 가치가 있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원자력계 일각에선 실제 원전발전단가는 현재 거래되고 있는 단가의 3배정도로 보기도 하는데, 이를 적용해도 여전히 태양광보다 싸다.
그러나 한국에서 말하는 원전의 발전단가는 정확한 폐로 비용과 고준위 방폐장 비용이 반영돼 있지 않은 가격이다. 한국에서 상용원전을 폐로한 경험이 없고 고준위 방폐장을 설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원전발전단가에 이들 비용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었다는 주장을 부정할 수 없다.
또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사고비용도 원전 1기당 9000억 원으로 산정돼 있다. 이에 반해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200조 원대의 사고비용을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에서 계산된 사고비용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야권은 원전의 발전단가가 정확히 산정돼있지 않은데 이를 기반으로 원전이 가장 값싼 에너지원이라는 주장과 이를 배경으로 탈원전을 추진한 전임정부를 비난하는 여권이 탐탁치 않다. 그러니 원전산업을 위해 필수적인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 통과에 선선히 협조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작금 사태의 책임을 여권에만 돌릴 수 없다. 현재 야당인 민주당이 여당이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 충분히 사실에 근접한 원전발전단가를 산정해 공표할 수 있었지만, 관련 작업에 착수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마무리가 흐지부지됐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떻든 고준위 방폐장은 꼭 필요하다. 국회에서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을 때도 원전에선 사용후 핵연료라 불리는 핵폐기물이 나오고 있고, 잔열을 식히고자 수조에 들어갔다가 임시저장고에 저장되고 있다. 임시저장고는 여유공간이 많지 않고 주민들이 안전을 우려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잠시 이용될 뿐이다. 궁극적으론 고준위 방폐장을 만들어 영구저장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한 것이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이다.
여야가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을 내놓고 있으니, 여야가 서로를 비난하기보다 솔직하게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 당시 이인호 산업차관의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쌓여가는 사용후 핵연료 때문이며 현재 원전의 발전단가가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 보자. 정확한 원전발전단가를 산정해 한국에서도 원전의 경제적 비용을 정확히 추산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러한 작업이 선행된다면 원전을 설계수명대로 운영하는 것이 나을지, 수명연장하며 재사용을 거듭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명확한 판단이 설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3가지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안을 다시 들여다보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통합입법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고준위 방폐장에 관한 논의가 진행된 지 20년이다. 당장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이 통과된다고 해도 방폐장 완공까지 37년이 더 걸린다. 고준위 방폐장에 대한 논의가 미뤄질 수록 미래세대에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원전발전단가에 대한 진솔한 산정부터 다시 시작해 여야간 대화의 물꼬를 트고 고준위 방폐장 착공을 앞당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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