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5조원 규모 재정건전화 계획 추진
중장기적 해상풍력사업을 수익사업화 전망
[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한국전력이 지난해 33조원에 이르는 역대급 영업손실로 인해 시름이 깊다. 돌파구로 삼았던 전기요금 현실화와 해상풍력 사업은 더디기만 하다. 그래도 재정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다는게 한전 입장이다.
이정호 한전 기획처장은 2일 데일리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적자 해소를 위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부분을 세밀히 점검하고, 장기적 안목으로 적자를 줄이는 자구안을 찾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남지역의 신재생에너지 과밀현상을 해소하고, 상황이 호전되면 해상풍력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획처장을 만난 자리는 전기·가스요금 조정 보류가 결정된 직후인 2일 예정됐던 산업부 2차관 주재 ‘한전 등 경영상황 긴급 점검 회의’가 연기된 직후였다. 그는 “공기업 재무상황 재점검, 국제연료비 변동추이, 공기업 자구노력 등에 대한 종합점검에 시간이 소요돼 불가피하게 연기됐다”고 밝혔다.
2022년 한전의 영업손실은 32조6551억원이다. 전년도에 5조846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2020년 4조875억원의 흑자를 냈던 점을 감안하면 2022년 적자규모는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력을 비싸게 사서 값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평균 가격으로 살펴보면 한전은 2022년 전력을 kWh당 평균 162.29원에 사서 106.61원에 팔았다. 2020년엔 평균 85.77원에 사서 97.23원에 팔아 이익이었는데, 2021년에 평균 101.64원에 사서 95.62원에 팔아 손해보는 장사를 시작했다. 당연히 영업손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한전은 전기를 kWh당 한수원으로부터 58.47원에 구매(전년 58.48원/kWh)했지만 나머지 발전자회사로부터는 전년도보다 60~70원 오른 가격으로 구매했다. 한전은 2022년 kWh 당 남동발전 169.60원(전년비 64.06원↑), 중부발전 189.62원(76원↑), 서부발전 192.23원(83.97원↑), 남부발전 185.07원(71.25원↑), 동서발전 178.74원(68.62원↑)을 전력구매비로 지급했다.
반면 한전은 전력을 전년보다 소폭 오른 가격으로 판매했다. 2022년에 kWh당 주택용의 경우 121.32원(전년비 12.16원↑), 일반용 139.10원(10.63원↑), 교육용 111.53원(9.84원↑), 산업용 118.66원(13.18원↑), 농사용 56.89원(10.94원↑), 가로등 124.53원(11.56원↑), 심야전력 74.26원(8.6원↑)에 팔았다.
역대 정권은 물가인상을 염려해 전기요금 현실화를 억제해왔는데 누적된 결과가 이번 대규모 적자로 터진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전은 발전사들에게 지급하는 전력구입대금을 돈을 차입해서 지급 중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전은 원가회수율이 약 70%에 불과한 상황에서 매월 4회 발전사들에게 지급하는 전력구입대금을 사채를 발행해 조달하고 있다. 만약 전기요금 조정이 상당기간 지연되면 한전채 발행규모를 더욱 늘릴 수밖에 없고, 한전 경영실적 악화가 조달금리 상승을 불러온다면 ‘한전채 쏠림현상’과 같은 채권시장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채권 총발행액 대비 한전채 비중과 발행금액을 보면 2022년 4.8%, 37조2000억원이었으며 2023년 4월 2일 현재 2.6%, 5조3000억원이다. 3년짜리 한전채 금리는 2021년 6월 1.6%에서 2022년 10월 5.8%로 정점을 찍었다가 2023년 3월 4.3%로 감소했다. 이는 금융권에 대한 대출금리인하 유도에 의한 것이지 한전의 경영실적이 안정됐기 때문이 아니다.
특히 산업부는 한전의 사채발행이 차질을 빚을 경우 전력구매대금 지급 차질, 기자재와 공사대금 지급 곤란으로 이어져 한전의 재무 위기가 발전사와 공사업계 등 전력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부와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두자릿수 인상을 포함한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이같은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2023년 1조5243억원 규모의 재정건전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한전에 따르면 이 계획엔 자산매각 7189억원, 사업조정 4588억원, 비용절감 1346억원, 수익확대 2120억원 등이 포함돼 있다.
자산매각의 경우 출자지분 5건, 부동산 12건이 진행 중이다. 특히 필리핀 세부 석탄화력소 발전소 매각이 탄력받고 있다. 지난 2월15일 본입찰이 마감됐으며 현재 입찰서 명확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전기술의 경우 최근 매각 적정주가에 진입해 매각자문사와 세부방안을 협의 중이다. 한전기술의 3월 31일 종가는 장마감 기준 7만5000원이다.
한전은 △건설사업 및 배전선로 인출공사의 공정조정 등 사업조정 △학위를 제외한 해외 위탁교육 축소와 업무추진비 긴축강화, 전력시장 제도개선 등 비용절감 △표준시설부담금 조정 등 수익확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전은 한발 더 나아가 히든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신재생에너지발전 사업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 대규모 해상풍력발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전은 서남해상풍력 실증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애초 2011년 11월 11일 희망차게 시작했던 서남해상풍력발전은 2017년 4월 말 첫삽을 떴고 사업 9년만에 60MW 실증단지를 완공했다. 현재는 400MW 1차 시범단지를 조성 중이다.
한전은 서남해상풍력발전의 경험을 기반으로 전남 신안 앞바다 등에 해상풍력발전사업을 추진 중이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공용접속선로 개념을 도입해 풍력발전사업자와 육지의 한전 송전선로의 접속을 추진 중이며 민간발전사업자와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전남지역에 신재생에너지 전력 비중이 크지만 한전은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정호 기획처장은 “현재 전남지역 신재생에너지 발전 잉여량이 타지역보다 많지만 한전은 송배전망 건설 등 꾸준한 노력으로 상황을 개선해 해상풍력발전사업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력의 주가는 지난 3월 31일 종가기준 1만8010원이다. 2016년 5월 31일 6만3700원 대비 72% 가량 떨어진 금액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수의견이 유지되고 있고 2만4000원대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부지분이 과반 이상으로 전기요금 현실화 문턱이 높아 30조원 넘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동시에 국가 기간산업이어서 버티는 것도 가능하다. 한전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지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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