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31년 근무자 “원전 주조정실 근무는 자부심이자 압박감의 원천”
[월성=데일리한국 안희민 기자] ‘국가보안시설 최고등급 가급 원자력본부’라는 표지판이 걸린 거대한 월성원자력발전소의 시멘트 방호돔들이 솟아 있었다. 폭우로 말끔히 씻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월성원전 방호돔 표면에선 세월이 새긴 곳곳의 흔적들이 뚜렷하게 돋보였다.
25일 월성원자력본부에서 만난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원전 방호돔 표면의 갈라진 틈을 메운 흔적이나 물 흐르는 대로 생긴 물자국에 대해 “유지보수할 사항을 명확히 인지하기 위해 일부러 도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신월성 1·2호기와 월성 1·2·3·4호기는 한데 모여 월성원자력본부를 이루고 있지만 여러가지로 다르다. 월성 1·2·3·4호기는 가압중수로, 신월성 1·2호기는 가압경수로다.
중수로의 경우 천연우라늄을 8개월동안 연료로 사용하고 사용후 핵연료를 배출한다. 경수로는 천연우라늄을 3~5% 압축한 연료를 사용하는데, 18개월마다 전체 연료의 3분의 1씩 사용후 핵연료로 배출한다.
중수로의 사용후 핵연료 배출량이 경수로보다 많은 셈인데, 이는 월성원전의 계속운전을 반대하는 논리의 근거가 되고 있다.
중수로와 경수로는 경제성 측면에서도 다르다.
중수로는 천연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차례 가공한 연료를 사용하는 경수로 대비 연료비가 저렴하다. 그러나 냉각재로 값비싼 중수를 사용한다.
그래서 한수원은 신월성 원전을 냉각재로 경수(일반적인 물)를 사용하는 가압경수로 방식을 채택했다.
외관상으로도 월성 1·2·3·4호기와 신월성 1·2호기는 다르다.
월성 1·2·3·4호기는 원통에 무쇠솥뚜껑을 얹은 모양인데, 신월성 1·2호기는 천문대처럼 반구가 얹혀져 있다. 그리고 표면에는 작은 원기둥들이 삼각 축으로 바닥에서 반구 정상까지 줄지어 설치됐다. 이 원기둥들은 원전 방호돔의 인장강도를 유지하기 위해 조였다 풀었다하는 나사 역할을 한다. 전체적인 모습이 땋은 머리를 연상케 한다.
원전 방호돔의 웅장함은 발전소 내부에서 외부로 연결된 출입문을 나설 땐 인지하기 쉽지 않다. 원전 방호돔이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를 벗어나야 웅장한 전모를 바라볼 수 있다.
월성원자력본부 근무자들의 외모에선 자부심이 넘쳐 보였다. 7조원 자금으로 지어진 웅장한 원전에서 전력을 만드는, 기간산업 최전선 현장 근무자라는 자부심이었다.
극한의 정신력이 압박감으로 다가오는 중앙제어실의 근무환경은 직원들을 다잡고 있었다.
빨간바탕에 노란 글씨가 새겨진 해병대 패치처럼 'RO'라고 새겨긴 빨간색 타원이 붙은 명찰을 단 월성원자력본부 최재석 홍보부 차장은 중앙제어실을 보여주며 “여기 근무자들은 자다가 꿈에서도 원자로를 운전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중앙제어실 근무자 급여가 많지만, 그만큼 강한 정신력을 요구받아 압박감이 크다는 얘기다.
최 차장은 고리원전에서 25년, 월성원전에서 6년 등 총 31년을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한 베테랑이다. 명찰에 붙은 RO는 Reactor Oporator의 약자로 그가 원자로운전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다.
최 차장에 따르면 중앙제어실에 들어간 근무자는 8시간 동안 교체되지 못한다. 다음 조가 들어와야지 비로소 중앙제어실을 벗어날 수 있다. 다음 근무조가 도착하지 않을 경우 계속 근무해야한다. 그래서 중앙제어실에는 한달치 식량이 구비돼 있다.
중앙제어실 근무자들이 늘 긴장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그들을 호출하는 전화벨에서도 알수 있다. 원자로운전원(RO), 터빈운전원(TO) 등 원전설비마다 배치된 인력을 호출할 때 쓰는 전화벨 소리는 모르스 부호처럼 각기 다르다. 같은 톤의 전자음이 길이만 달리해 소리를 부정기적으로 내기 때문에 근무자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일할 수 밖에 없다.
압박감이 크기 때문에 월성원자력본부는 중앙제어실 근무자들을 6개조로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1개조가 근무하면 다른 1개조는 교육을 받으며, 또다른 1개조는 휴식을 취한다. 교육시간은 중앙제어실 근무자들이 압박감을 해소하고 재충전하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런만큼 급여 수준도 높다. 최 차장에 따르면 주임이 RO를 따면 15년 뒤 받을 월급을 받는다.
최 차장은 “급여로 고액을 수령하는 발전부장이지만 7조 원의 설비를 책임지고 운영하는만큼 압박감도 클 것”이라면서 “발전부는 근무자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회사 운영의 근본 부서”라고 말했다.
크기에 비해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원자력연료도 월성원자력본부 근무자들의 또다른 자부심이었다.
최 차장은 사용후 핵연료를 6개월동안 보관하며 냉기를 식히는 푸른빛의 사용후연료 저장조가 내려다 보이는 공간에서 연료펠릿이라 부르는 핵연료 소결체 모형을 보여줬는데, 크기가 직영 8.19mm, 길이 9.83mm, 무게 5.4g에 지나지 않았다.
최 차장에 따르면 이 작은 핵연료 소결체 1개가 4인가족이 8개월동안 사용하는 1800kWh의 전력을 생산한다. 최 차장은 “핵연료 소결체가 생산하는 에너지는 석유 47드럼, 석탄 16톤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월성원자력본부 근무자들의 자부심 원천에 대해 듣다 보니 그들이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극렬히 반대한 이유가 이해됐다.
지난 5년을 어떻게 견뎌냈냐는 질문에 최 차장은 “급여생활자이지 않냐”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원전 계속운전을 반대하는 정치인이나 시민단체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원자력발전 자체를 그들의 삶이자 정체성과 신념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원전에 반대하는 의견에 반사적으로 반발하는 것이었다.
최 차장은 “원전에서 31년 근무하면서 아들 둘, 딸 하나 기르며 건강하게 살고 있다”며 당당해 했다. 최 차장의 이 말에 불과 2주일 전 국회에서 한수원 황주호 사장을 몰아붙이던 야당 의원의 거친 모습이 떠올랐다. 탈원전과 탈탈원전, 양 극단의 충돌은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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